시사저널 ‘서민의 술’ 막걸리, 이제는 고급 전통주로 탈바꿈해야

조회 수 548 추천 수 0 2018.02.27 13:47:03

막걸리에 대한 표준화 시급…첨가물 없이 국내산 쌀로만 빚어야


무술(戊戌)년 황금개띠해가 밝았다. 2월16일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기다리고 있다. 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차례상이다. 떡국을 시작으로 갖가지 전과 나물 등 설날에 먹어야 제맛인 음식들이 차례상을 가득 채운다. 술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차례상 술로 막걸리를 사용하는 것을 낯설어 하는 가정이 많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청주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례상에 올라가는 술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다만 명절이니만큼 우리 고유의 전통주를 사용하면 될 일이다.

 

실제로 조선 시대 왕실의 으뜸가는 행사 중 하나였던 종묘제례에서 막걸리가 사용됐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한 종묘제례는 조선 시대 역대 왕과 왕비에 대한 제향 의식이다. 종묘제례에서는 모두 세 차례 술을 올리는데, 첫 번째 올리는 ‘예제’는 단술로서 발효 정도가 가장 낮은 동동주를, 두 번째 올리는 ‘앙제’는 청주를 만들기 전 여과하지 않고 만든 막걸리를 올린다. 마지막으로 청주를 올리는데, 주정을 섞은 현대의 일본식 청주가 아니라 발효된 곡물 원료로 빚은 맑은 술이다. 아직도 부산·경남 지방에서는 제사나 차례상에 막걸리를 사용하는 전통이 남아 있다.



조선 왕실 제례주로 사용된 막걸리

 

궁중의 제례의식 때 사용했던 막걸리는 현재 값싸고 서민적인 술로 인식되고 있다. 1960~70년대 배고프던 시절 서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었던 술이 막걸리였고, 1980~90년대 돈 없는 대학생들의 선택도 막걸리였다. 비 오는 날 부침개와 함께 막걸리를 떠올리는 것은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을 것이다.

 

막걸리의 이런 서민적 이미지 때문에 최근에는 정치 뉴스를 통해 막걸리를 접하는 일이 많아졌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국민들에게 몸을 낮추면서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는 서민적이고 소박한 이미지의 막걸리를 만찬주 등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민적인 이미지의 막걸리가 소통의 매개체로까지 격상된 셈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인 이낙연 총리의 막걸리 사랑은 각별하다.

 

그는 2월8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연찬회에서 “정부는 혁신성장의 성공적 정착과 경제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경영자 여러분과 더 소통하고 기업을 더 존중하겠다. 당장은 경총 지도자 여러분과 이달 안에 막걸리 회동을 갖도록 제가 제안드린다”며 막걸리 회동을 제안했다. 국내 최고의 CEO들과의 회동에도 막걸리가 등장한 것이다. 이 총리는 CEO뿐만 아니라 야당 정치인, 장관, 기자, 외국 귀빈 등과도 막걸리를 통해 소통의 물꼬를 트고 있다. 이 총리는 총리로 부임하면서부터 “총리가 되면 막걸리를 같이 먹을 상대가 늘어날 것이다. 체력이 허락하는 한 저수지 몇 개는 마실 것”이라면서 “역사상 가장 막걸리를 많이 소모하는 총리공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막걸리 소통을 천명하기도 했다.

 

이 총리의 막걸리 예찬론을 보면 막걸리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첫째, 많이 마시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그래서 과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소위 2차를 가지 않아도 된다. 막걸리를 마시면 배가 불러서 술자리가 길어질 수 없고, 이 때문에 주머니 사정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셋째, 술자리가 길어지지 않으니 일찍 귀가할 수 있다. 따라서 가족관계도 좋아지고 다음 날 업무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넷째, 소주나 폭탄주를 마시고 싸우는 경우는 있어도 막걸리를 먹고 싸우는 일은 없다. 어지간한 술고래도 막걸리로 ‘원샷’을 하지 않기 때문에 폭음으로 이어지지 않고, 천천히 마시며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다.

2017년 11월23일 서울 동대문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2017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에서 와인 수입업체, 소믈리에, 호텔 및 레스토랑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85개 샤토들의 와인을 맛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17년 11월23일 서울 동대문구 JW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열린 ‘2017 보르도 그랑 크뤼 전문인 시음회’에서 와인 수입업체, 소믈리에, 호텔 및 레스토랑 관계자 등 전문가들이 85개 샤토들의 와인을 맛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양날의 검이 된 막걸리의 서민적 이미지

 

이처럼 서민적인 이미지는 막걸리의 최대 장점이다. 그러나 최대 장점이 오히려 막걸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값이 싸다’는 이미지가 ‘질이 좋지 않다’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종종 일본 전통주 사케와 비교된다. 쌀을 바탕으로 한 발효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케는 엄격한 품질 관리로 고급화에 성공했고, 전 세계 시장에서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막걸리는 세계화는커녕 국내 시장에서도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막걸리는 ‘싸고 토속적이어야 한다’는 이미지에 함몰돼, 술의 품격을 높이는 데 실패했다. 오히려 아스파탐·구연산·사카린 등 화학 첨가물이 가미되면서 막걸리는 마시면 머리가 아픈 술, 숙취가 심한 술이라는 오명까지 얻었다. 일부 업체들이 막걸리를 동동주로 둔갑시키고, 기능성 막걸리로 선전하면서 화학 첨가물을 넣고, 양을 늘리기 위해 물을 섞고 싱거워진 맛을 보충하기 위해 사카린 등을 첨가하면서 막걸리는 점점 소비자에게서 멀어져 갈 수밖에 없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막걸리의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원료를 국내 쌀로 제한하고 다른 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 제조방법에 따라 만들 수 있도록 엄격한 규제를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사케의 경우 자국 쌀, 물, 제조방법에 따라 사케의 종류와 가치를 평가하고 있다. 쌀의 생산지와 도정도를 중요시하며, 술맛을 결정하는 또 다른 중요 요소인 물에 대한 평가도 엄격하다. 일본주주서비스연구회·주조장인연구회연합회 등에서 ‘일본산 청주 원산지 호칭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쌀의 경우 정미보합이 70% 이하면 본양조주, 60% 이하 음양주, 50% 이하 대음양주로 구분되며, 쌀과 쌀누룩만 사용할 경우 60% 이하는 순미음양주, 50% 이하는 순미대음양주로 불린다. 의무적으로 정미 비율을 표시해야 하며, 양조알코올을 사용할 경우 백미 중량의 10%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원료쌀은 농산물 검사법에서 3등 이상으로 등급이 매겨졌거나 이것에 상당하는 품질의 것만 사용할 수 있다. 와인의 나라 프랑스도 와인의 품격을 높이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와인 등급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반면 막걸리의 경우 막걸리에 대한 규정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수입쌀은 물론 쌀 이외에 밀·옥수수·보리 등이 첨가될 수 있다. 단지 식품위생법상 국내산 쌀, 수입쌀 비율 등을 용기에 표기해야 되는 의무만 있다. 2016년 주정용으로 시중에 공급된 수입쌀은 20만1000톤에 이른다. 또한 국내 쌀의 경우에도 햅쌀이 아닌 대부분 묵은쌀로 막걸리를 주조하고 있다. 햅쌀과 묵은쌀은 따로 표기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 밖에 물에 대한 규정은 안정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다른 화학 첨가물 사용도 가능하기 때문에 발효주 고유의 맛과 향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서울 사케 페스티벌’을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6 서울 사케 페스티벌’을 찾은 관람객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엄격한 규제 통한 막걸리 고급화 이뤄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막걸리 제조업체들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외시장은 더욱 처참하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발간한 ‘2017 농식품 수출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막걸리 수출액은 1286만8000달러를 기록했다. 최고치를 찍었던 2011년 5273만5000달러에 비해 75.6% 급감한 것이다. 같은 기간 사케는 수출액 1억4361만 달러를 기록해 전년 대비 30% 이상 성장세를 기록했다. 수출액으로 따지면, 막걸리에 비해 10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중국의 전통주 바이주(白酒) 역시 4억6789만 달러를 기록해 172%의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다. 같은 전통주임에도 이와 같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막걸리가 사케·바이주와 달리 고급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막걸리의 평균 수출단가는 리터당 0.99달러지만 사케는 7.28달러, 바이주는 28.65달러를 기록했다. aT는 “막걸리 수출 확대를 위해서는 저렴한 술에서 고가·고품질 술로 소비자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막걸리를 제대로 만들 경우 막걸리 품질은 다른 어떤 술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도쿄농업대학이 2017년 발표한 막걸리의 성분 분석에 따르면, 생막걸리는 살아 있는 효모와 유산균 등이 사케나 와인 등 다른 술에 비해 다량으로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와인의 특징 중 하나인 쿠엔산은 막걸리가 1.2배, 사케의 특징인 유산은 1.2~1.9배 많이 함유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단백질은 막걸리가 사케보다 2.8배, 와인보다 5.1~11배 많이 포함된 것으로 나타났다.

 

막걸리는 우리 고유의 술로, 산업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전통문화를 전파하고 계승한다는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일본은 사케에 문화적·사회적 가치를 담아 단지 술을 파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판매하는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4년 전 100여 개의 막걸리 회사들이 뭉쳐 한국막걸리협회를 만들었다. 막걸리협회는 경기대 대학원에 양조경영과를 신설하고 일본 현지에 막걸리 홍보를 위한 갤러리를 만드는 등 막걸리의 표준화·고급화·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세계적인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를 본떠 경기 가평 자라섬에서 ‘자라섬 막걸리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이 페스티벌에서는 전국 유명 양조장에서 빚은 600여 종의 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조해수 기자 ㅣ chs900@sisajournal.com

원문보기: http://www.sisajournal.com/journal/article/173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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