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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quire] 전통주 시장은 정말 언론에 회자되는 것처럼 '기회의 땅'일까?

조회 수 1003 추천 수 0 2023.01.30 19:24:42

요즘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전통주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전통주 시장은 정말 언론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기회의 땅일까?

오성윤 20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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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부터 1월 10일까지 대동여주도에 들어온 신제품 전통주들 중 일부. 최근 전통주 시장에서는 출시되는 신제품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얼마 전, 명절 선물 이야기를 하다 지인의 입에서 이런 표현이 나왔다. “전통주 어때요? 요즘 전통주가 유행이기도 하니까.” 어떤 전통주가 좋은지를 되물었지만 그는 말끝을 흐렸다. 사실 별로 마셔본 적은 없다고. 이후에도 설 관련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전통주라는 주제를 꺼내봤지만, 전통주를 자주 마신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건 다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되고 보니 ‘요즘 전통주가 유행’이라는 표현은 새삼 묘연해졌다. 대체 어디서 어떻게 유행이라는 걸까? 내가 아는 누구도 전통주를 즐겨 마시지 않는데? 주요 소비층이 따로 있는 걸까? 아니, 그보다 정말로 전통주 시장이 커지고 있긴 한 걸까?
결론부터 내놓자면 전통주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수치상으로는. 국내 전통주 산업은 국세청의 출고금액 기준 산정으로 2021년 약 941억원 규모였다. 2020년에는 약 627억원이었으니 ‘대폭 성장’이라는 표현을 써도 무리 없을 정도다. 2022년도 통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꾸준히 전통주를 연구해오고 있는 경기도농업기술원 이대형 박사의 견해에 따르면 분명 더 성장했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런 급격한 성장세에도 전통주 시장이 블루오션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의 전통주 시장이 레드오션이라고 단언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보다 공급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빠른 것이다. “전통주가 ‘힙’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고 이슈가 될 만한 요인들도 계속 나오고 있는데, 그에 비해 파이가 생각만큼 빠르게 커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국내 전체 술 시장에서는 이제 1%를 간신히 넘긴 수준이니까. 하지만 수요만 더 늘어난다면 앞으로 충분히 블루오션으로 전환될 수 있는 시장인 거죠.” 다만 이런 측면 때문에 전통주 시장의 성장세가 단순한 ‘착시’일 수 있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역시 전통주 시장을 면밀히 살피고 있는 한국식품연구원의 김재호 박사는 전통주 시장의 성장이 단순히 공급처가 많아지면서 일어난 일일 수도 있다고 했다. “추이를 봐도 새로운 소비 계층이 확 늘어서 전체 파이가 커지고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거든요. 보험회사에서 보험설계사를 신규로 뽑으면 주변 사람들이 가입해줘서 신규 가입자가 많아지듯이, 단순히 제조업체가 늘어나서 판매가 늘어나는 부분도 있는 거죠. 일반 소비자들에게까지 확산돼서 구매 선순환이 일어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해요. ”
사람들이 ‘전통주가 유행’이라고 인식하는 가장 큰 이유도 분명 공급 측면에 있을 것이다. 신제품이 끝도 없이 나오고 있으니까. 2016년부터 전통주전문점 백곰막걸리를 운영하고 있는 이승훈 대표도 요 몇 년간 신제품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백곰막걸리는 오픈 초기부터 새로 생기는 양조장에 전부 찾아가서 신제품을 모두 가져와 소개하고 판매해왔어요. 하지만 이제 저희가 모든 술을 알리는 건 불가능해졌죠.” 이승훈 대표는 전통주 시장에서 수요가 자체적으로 성장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젊은 세대들의 전통주에 대한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데다가, 무엇보다 온라인 판매가 가능하다는 특성 때문에 팬데믹을 기점으로 특수를 누린 부분이 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전통주 시장이 성장했다’고 말하는 건 범위를 어떻게 나누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이야기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무형문화재나 명인들이 만드는 전통주는 더 늘어나는 데에 한계가 있어요. 더구나 작년부터 정부에서 명인들이 다양한 술을 개발하는 것을 억제하는 정책을 시작했거든요. 문화재라는 게 원래 발전적 측면보다 유지 보존적인 사고방식이 더 강하니까, 기존 명인주 관리에 더 힘을 쏟게끔 하는 거죠. 지금 성장하고 있는 전통주는 지역특산주 영역이라고 보는 게 정확해요.”
현행법상 전통주는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다. 국가 및 시도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제조한 술인 무형문화재,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제조한 술인 명인주, 지역 농업인이 지역 농산물로 만든 술인 지역특산주. 세 번째 항목이 자꾸 논란이 되는 건 해당 요건 때문에 와인, 진, 고량주, 애플사이더 같은 술도 전통주로 등록되는 한편, 지역 농산물로 제조하지 않은 막걸리나 소주는 범주 바깥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서는 이미 뜨겁게 논의가 진행된 바 있고 개정안도 마련되고 있으니 따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전통주 시장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분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10년도 더 전에 넣어놓은 건데, 이게 오히려 지금의 전통주 시장에 득이 된 부분이 있는 거죠. 전통주는 50% 주세 감면과 전자상거래 허용 혜택이 있잖아요. 딱히 전통적인 양조 방식에 매달릴 필요도 없는데 혜택도 크니까 양조장을 내려는 사람이 많아진 거예요.” 그런 이유로 시장에 들어오는 신규 창업자 대다수가 청년이라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제가 2010년쯤 이 시장에 들어왔을 때 서른 다섯 살이었는데 그때는 어떤 자리에 나가도 제가 어렸거든요. 그런데 10년 동안 이 업계가 너무 젊어졌죠. 점진적으로도 아니고 갑자기.” 이승훈 대표는 반농담이라는 걸 알리듯 너털웃음을 지으며 ‘억울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한강주조 같은 젊은 브랜드의 성공 사례를 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겠죠. 인터넷에서 유명하다는데 마셔보면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을 거거든요. 그렇게 관심 갖고 들여다보면 생각했던 것처럼 큰 공장 시설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같이양조장 최우택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전국 가양주대회에서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는, 전통주업계의 이름난 실력자다. 여러 교육기관에서 과정을 이수하고 대학원에서 양조학까지 공부한 후 5년 동안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자회사 형태의 공방을 운영하다 3년 전 연희동에 처음 양조장을 열었는데, 최근에는 합정동에 2호점까지 오픈했다. 단독 5층 건물에 둥지를 튼 합정점은 판매업장과 양조장은 물론 사무실, 양조 연구소, 다이닝 플레이스까지 갖추고 있다. 그 역시 처음 양조장을 차렸을 때 30대였고 같이양조장은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어, 최우택 대표는 양조장을 오픈하려는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파악할 수 있었던 사람 중 하나다. “아마추어 때 원가 계산 안 하고 온갖 공을 들여 만든 한 배치(batch)의 술은 당연히 맛있겠죠. 하지만 양조장을 운영하면서 그 맛을 낼 수 있는가 하는 건 다른 문제잖아요. 최근에 어떤 분이 자기도 양조장을 차리겠다는데, 한 종류의 술을 가장 많이 빚어본 게 대여섯 번이래요. 그래서 그랬죠. 친구가 짜장면 다섯 번 만들어보고 중국집 차린다고 하면 안 말릴 거냐고.” 최근 들어 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그리 깊지 않은 사람들이 전통주 시장에 들어온다는 건 이 기사를 위해 인터뷰했던 대부분의 전문가가 입을 모아 말했던 경향이다. 전통주 교육기관에서 1년 정도 교육 받고선 대뜸 양조장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2022년 5월 기준으로 농림수산식품부가 지정한 전국의 우리술 전문인력 양성기관은 6곳, 우리술 교육훈련기관은 17곳이다. 전통주 시장의 성장에는 물론 이 시설들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최우택 대표는 최근 새로운 양조장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난립하는 데에 교육기관 탓도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무조건 챌린지를 해보라는 식의 분위기가 있거든요. 자기 기관의 수강생들이 창업을 많이 할수록 운영에 도움이 되니까요. 물론 자기 인생이니 자기가 내린 결정에 책임을 져야죠. 하지만 교육기관들도 사람들에게 좀 더 신중한 자세를 권하면 좋겠어요.”
 
“젊은 친구 세 명이 5000만원씩 모아서 ‘야 너는 술 만들고,  너는 디자인하고, 나는 마케팅할게’  해서 시작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간과되는 부분이, 이 시장에 발을 들이고 나서 오래도록 수입이 없다는 특성이 있다는 거예요.” 

 
최우택 대표는 오히려 양조장을 차린다는 사람들을 말리는 편이다. ‘그냥 식당 하시라’고 한다고. 그건 재미있는 표현이었는데, 전통주 업계에 뛰어드는 젊은이가 많은 이유 중 하나는 초기 자본이라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낮다는 점 때문이며, 많은 전문가가 그걸 식당 창업 요건과 비교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초기 자본 측면에서 큰 이점이 있다는 데에는 최우택 대표도 동의했다. “맥주 양조는 공간이 10평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전통주는 2, 3평이면 어떻게 할 수 있거든요. 그 정도 공간의 보증금은 은행의 청년 대출로도 쉽게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젊은 친구 세 명이 5000만원씩 모아서 ‘야 너는 술 만들고, 너는 디자인하고, 나는 마케팅할게’ 해서 시작하는 거죠. 5000은 부동산 보증금, 5000은 인테리어, 5000은 안전기금 이렇게 하면 딱 맞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간과되는 부분이, 이 시장에 발을 들이고 나서 오래도록 수입이 없다는 특성이 있다는 거예요. 식약처 통과 기다리고, 또 국세청 통과 기다리고, 제품 나오는 거 기다리고, 뭐가 잘못되면 다시 나오는 거 기다리고…. 몇 달이 그냥 날아가거든요. 이런 구조의 장사가 어디 있겠어요. 그나마 막걸리, 탁주는 빠른 편이고 약주나 증류주는 더 오래 걸리죠. 그래도 저는 만약 자금 여유가 있어서 1, 2년 버틸 수 있다면 탁주보다는 약주나 증류주를 하라고 해요. 탁주는 상미 기한이 짧아서 유통이 어려우니까요. 손실분도 많고, 업장에서 잘 받아주지도 않고요. 그런데 1, 2년 버틸 자금이 있다면 굳이 전통주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술 만드는 게 너무 좋고 내 멘털이 강하다, 그러면 하겠죠. 아니면 다른 걸 하는 게 낫다고 봐요.”
결국 ‘명절 선물로 좋은 요즘 전통주’ 추천을 받아낸 곳은 대동여주도였다. 2014년 설립된, 전통주의 부상 이전부터 오래도록 전통주를 연구하고 홍보해온 전통주 콘텐츠 제작 및 유통 플랫폼. 사무실에 앉자 이지민 대표는 대뜸 술 취향부터 물었다. 그리고 독특한 술을 좋아한다는 말에 냉장고에서 몇 병의 술을 꺼내왔다. 라즈베리, 히비스커스, 비트, 화자오, 우뭇가사리를 넣어 만든 탁주 미미미1 단홍이나 애엽쑥을 넣어 만든 쑥막걸리 쑥크레 같은 걸 맛볼 때는 그야말로 감동이 밀려왔다. 전통주 시장이 개별 취향에 맞춰서, 이렇게나 재미있고 맛도 있는 술을, 그것도 몇 병씩이나 제시해줄 수 있을 정도로 풍성해졌구나 싶어서. 하지만 그 감상을 전하자 이지민 대표는 말없이 일어나 다른 술을 몇 병 가져왔다. 그 반대 지점의 술들이라고 했다. 그녀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술. (해당 술들의 정보는 비밀에 붙인다.) “들어오는 술 10개 중에 한두 개만 좋은 술이 있어도 만족스러운 편인 것 같아요. 절반 정도는 그야말로 심각한 수준이고요. 그냥 기존에 잘된 브랜드와 비슷하게 만드는 곳이 정말 많거든요. 내세우는 포인트도 다 똑같죠. 무감미료, 수제, 삼양주… 변별력이 없는 술이 너무 많아진 거예요.”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의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그는 전통주 시장에 마케팅의 힘으로 성공한 케이스가 더러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시장에서 먹히는 콘셉트를 잘 포착해 성공했던 경우가 존재하는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몇 년 전의 시장 상황이라고 단서를 달기도 했다. 고작 몇 년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기사 내내 말했듯 전통주 시장은 지난 몇 년 동안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이뤘다. 적어도 공급 측면에서는 말이다. 맛이 그저 그렇고 변별력이 없는 술은 이제 보틀 숍에서든, 주점에서든 순식간에 새로운 술로 대체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까. 기존 양조장들도 이슈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협업 제품과 특별판을 내고 있고, 그 역시 이 시장에 신제품이 넘쳐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다. ‘뻔한 술이라도 패키지를 잘 만들고 SNS에서 홍보를 잘해서 승부를 보면 될 것이다’ 하는 생각으로 이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면 생각을 고쳐먹는 게 좋다는 뜻이다. 대동여주도에 다녀온 후 이지민 대표가 보여줬던 ‘난감한 술’ 중 하나의 주종이 문득 궁금해져 한 차례 인터넷을 뒤졌는데,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콘셉트가 제법 독특한 술이라 생각했지만 미처 몰랐을 뿐 그런 술도 이미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


출처 : https://search.naver.com/p/crd/rd?m=1&px=451&py=1725&sx=451&sy=754&p=h9PkSwp0YihsskAXMxRssssstlR-391487&q=%EC%A0%84%ED%86%B5%EC%A3%BC&ie=utf8&rev=1&ssc=tab.news.all&f=news&w=news&s=V2%2FpWTapq3pZblZty9MLJeQ0&time=1675074394096&a=nws*f.tit&r=21&i=881898ca_000000000000000000006892&g=5691.0000006892&u=http%3A%2F%2Fwww.esquirekorea.co.kr%2Farticle%2F7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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