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뉴스

[한겨레] 술 빚는 두 청년은 왜 짐 로저스의 투자를 거절했나

조회 수 919 추천 수 0 2022.12.27 20:26:23
입력
 
 수정2022.12.26. 오전 7:21

 

대전 청년 양조장 ‘으능정이부루어리’ 이야기

0002620737_001_20221226143101104.jpg
으능정이부루어리의 민재명 대표(왼쪽)와 황주상 이사가 지난 22일 대전 중구 은행동의 양조장에서 술과 쌀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양조장에서 목척교를 바라보며 술 이름을 지었어요.”

펑펑 내리는 눈 사이로 멀리 목척교가 보였다. 민재명(33) 으능정이부루어리 대표가 유튜브 홍보 영상에서 한 말이 떠올랐다. ‘목척교는 어떤 맛일까?’ 다리를 보면서 입맛을 다시다니. 픽 웃음이 나왔다.

지난 22일 귀한 술을 혹시나 맛볼 기대감으로 찾은 대전 중구 은행동의 ‘으능정이부루어리’ 사무실에는 큼지막한 꿀통 9개가 쌓여 있었다. 황주상(29) 이사는 “대전 유성에서 나는 아카시아 꿀이다. 요즘 벌들이 많이 죽은 탓에 꿀이 귀하다. 저게 200만원어치”라고 설명했다. 저 귀한 꿀로 고대 북유럽인들이 즐겨 마시던 술, ‘미드’(mead)를 만든단다. 황 이사는 “수백번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프리미엄 미드’”라고 말하며 술 한잔을 건넸다. 달지만 담백한 맛. “미드는 무조건 차갑게 마셔야 맛있어요.” 옆에 있던 민 대표가 추임새를 넣었다.

대전 원도심에 있는 으능정이부루어리는 민재명, 황주상 두 청년이 설립한 양조장이다. 가내수공업 방식으로 미드, 소주, 막걸리, 사케를 만든다. 지난해 <에스비에스>(SBS)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출연을 계기로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이 이곳에 투자하겠다고 해 시선을 끌기도 했다. 짐 로저스가 지난해 12월 한국에 와 가장 먼저 만난 이도 으능정이부루어리의 두 청년이었다.

민 대표와 황 이사는 대학교 통기타 동아리 선후배로 죽이 잘 맞는 술친구다. 졸업 후 민 대표는 아이티(IT) 업계에서, 황 이사는 청년활동가로 일하던 중 어느 날 뜬금없이 “우리가 직접 술을 만들어 팔아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작당이 끝나기 무섭게 2020년 3월 사업자등록부터 했다. 맨 처음 만든 건 ‘성심당 빵술’이었다. ‘지역 대표 명물 성심당 빵으로 술을 만들면 어떨까’란 단순한 생각으로 시도했는데, 반응은 그야말로 ‘열광적’이었단다.

“시중에 파는 맥주 만들기 키트에 성심당에서 사 온 빵을 넣는 수준이었어요. 전문가들이 고심해 내놓은 제품으로 만든 것이니 당연히 맛은 있었죠. 거기에 지역 명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받았다고 생각해요.”

으능정이부루어리의 2인방은 지난해 12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짐 로저스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짐 로저스는 으능정이부루어리에 대한 투자를 제안했지만, 두 청년은 거절했다. 왼쪽부터, 민재명 대표, 짐 로저스, 황주상 이사. 으능정이부루어리 제공


성공(?)적인 첫 실험을 뒤로하고, 둘은 본격적으로 양조기술 배우기에 돌입한다. 제주도 국세청 주류면허지원센터에서 양조기술 교육을 받았고, 서울의 한국가양주연구소의 수업도 들었다. 막걸리도 만들고, 미드도 만들었지만 ‘이거다!’ 하는 맛은 아니었다. 환기도 안 되는 좁은 사무실에서 실험에 가까운 술 만들기를 반복하다 술통 옆에서 취해 잠든 것도 여러 날이다. 아직 실력이 부족했지만, 수강생을 받아 양조 교육도 시작했다. 남을 가르치며 반응을 주고받는 것이 가장 좋은 배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양조기술을 연마하면서도 새로운 시도는 계속됐다.

커피 찌꺼기를 이용한 누룩을 개발해 특허 출원하고, 2020년 11월 환경부가 주최한 ‘자원순환 우수사례 경진대회’에도 참여했다. 이 대회에서 으능정이부루어리는 ‘국내 최초 새활용 양조장’으로 1등(최우수상)을 차지했다. 2등은 에스케이(SK)하이닉스와 배달의민족, 3등은 풀무원이었다.

“대기업들과 경쟁이 좋은 자극이 됐어요. 새로운 가치와 기술을 전통 산업에 적용했을 때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죠.” 민 대표의 말이다. 성공에 확신이 들자 민 대표는 서울에서 하던 아이티 사업을 접고, 대전에 내려왔다. 황 이사도 청년활동가 일을 정리했다. 2년 동안 실험 끝에 미드(목척교), 커피 누룩으로 만든 소주(드렁큰히어로)뿐 아니라 북한 술(한반도), 막걸리(백련당), 사케(우에시다리) 등을 상품화했고, 첫 판매를 앞두고 있다.

북한 고위직 탈북민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한반도는 25도(한반도 북위), 38도(38선), 42도(백두산 북위) 등 3가지 도수로 나눠 출시한다. 백련당은 민 대표의 선조 민재문의 호를 딴 술이다. 발효하고 걸러내기를 열두번 반복한 십이양주이기도 하다. 백련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에 뜬 청주인 ‘우에시다리’는 일본 사케 시장을 겨냥해 만들었다. ‘위 아래 법칙’이란 뜻의 일본말 우에시다리는 일제강점기부터 대전 지역 어린이들의 편가르기를 할 때 외치는 구호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술마다 저마다의 스토리와 맛을 담았다. 대전에서 난 쌀로만 술을 만든 것도, 모든 술을 유리병에 담아낸 것도 으능정이부루어리의 특징이다. 맨땅에 헤딩해 터득한 ‘양조장 만드는 노하우’도 조만간 온라인에 공개할 예정이다.

“중국에는 칭다오, 일본에는 아사히·삿포로가 있어요. 지명보다 술이 먼저 떠오르는 그런 브랜드지요. 지역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고민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드는 것, 그것으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공존하는 것이 저희의 꿈입니다.” 두 청년은 입 모아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부러워할 짐 로저스의 투자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심당’처럼 느려도 꾸준히 성장하고 싶습니다.” 반짝 대박을 노리고 스타트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여느 청년 사업가들과는 다른 우직함이 으능정이부루어리를 이끌고 있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sort

술의 마을, 전북 정읍으로 떠나는 막걸리 여행 [1]

무형문화재 및 전통식품 명인인 죽력고의 송명섭 명인을 찾아서 서울 양재나들목에서 천안 논산 고속도로, 호남고속도로까지 약 240km를 달리다 보면 전라북도 남서부에 있는 역사 깊은 도시를 만난다. 동쪽은 임실군, 완주군과 접하고 있으며, 서쪽은 부안과 ...

  • 누룩
  • 2013-04-22
  • 조회 수 3193

‘막걸리’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인포그래픽]

직장인·학생 등 모두 매주 금요일, 숨 가빴던 한 주를 마무리한다. 음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통곡주 ‘막걸리’의 효능 및 더 맛있게 먹는 방법 등을 준비했다. 알고 먹으면 더 맛있는 막걸리, 인포그래픽으로 살펴보자. 인포그래픽 기획 ...

  • 누룩
  • 2015-08-26
  • 조회 수 3160

웰빙 다이어트 음료로 각광받는 식초음료 X파일 [2]

100% 과일 발효초 vs 옥수수로 만든 무늬만 과일식초 요리에 신맛을 더해 식욕을 돋우고 감칠맛을 배가시키는 식초. 이런 식초에 체내 pH 정상화, 피로해소, 신진대사 촉진, 노폐물 배출 등 다양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어느 새 식초가 명실공히 건...

  • 누룩
  • 2013-03-13
  • 조회 수 3109

[주간동아]전통주, 밀레니얼 세대의 인기 얻고 구독자 3배 증가 [명욱의 술기로운 생활] file

6월 12~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국내 최대 주류 전시회인 ‘2020 서울국제주류박람회’가 열렸다. 매해 열리는 행사지만, 올해는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됐다. 전통주 부스에 적잖은 인파가 몰렸다. 특히 사단법인 한국전통민속주협회가 운영한 ‘한국 전...

  • 누룩
  • 2020-06-23
  • 조회 수 3089

[끌어올림]술독회원님께 찹쌀, 엿기름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대흥쌀유통"입니다. 한국가양주연구소에서 처음 전화가 와서 전통주에 찹쌀이 많이 들어가는줄 알았어요. ㅠ 많은 가양주연구소 여러분들의 주문에 택배발송을 해드렸네요. 술독회원님들께는 기장을 써비스로 드리고 있습니다. 좋은 ...

[알면 더 맛있는 식품] 식초 상식② 산성이냐 알칼리냐

[쿠키 생활] 식초 상식 대방출 2탄. 오늘은 식초의 영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식초가 몸에 좋다고 하는데, 대 체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잘 모르는 경우 많다. 식초는 총 60여 종의 유기산이 들어 있는 항산화제로 노화와 질병을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파괴해...

  • 누룩
  • 2013-04-09
  • 조회 수 3057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약으로 쓰이는 웰빙막걸리

막걸리가 발효되는 모습<사진: 주류문화칼럼니스트 명욱> 아주경제 김선국 기자=최근 막걸리가 항암, 소염, 비만억제 등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막걸리에 함유된 미생물에 의한 생리활성물질(항균물질)의 기능과 효능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 누룩
  • 2013-07-30
  • 조회 수 3045

하우스막걸리 (소규모주류제조면허 입법예고) file

소규모주류제조면허 아주 오래전부터 주장했던 제도가 만들어졌다. 아주 단순했지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논리는 간단했다. 하우스맥주는 되고 왜 하우스 전통주는 안되냐. 이 단순한 논리가 오늘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1995년 오늘과 같이 큰 사건이 있었다....

  • 누룩
  • 2015-12-28
  • 조회 수 2958

효과 높은 식초 다이어트, 제대로 하려면

요즘 ‘식초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식초는 몸 안의 영양물질을 분해하고 합성해 에너지를 만들고, 필요하지 않은 성분은 몸 밖으로 내보내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비만을 예방하고 살을 빼는데 효과가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

  • 누룩
  • 2013-09-30
  • 조회 수 2954

막걸리, 중기적합업종 지정이 毒됐나

5년만에 출하량 첫 감소, 대기업 규제후 사업 철수.. 마케팅·프로모션 등 급감 업계 "시장 침체 가속화" 막걸리시장 보호를 위한 '중소기업 적합품목' 지정이 오히려 막걸리시장 침체를 가속화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대기업 참여 제한을...

  • 누룩
  • 2013-07-18
  • 조회 수 2945

“전통주 소믈리에 연구 더 힘써야죠” file

경남대 관광학부 ‘경남도 대회’서 도지사상 등 15명 수상 ▲ 경남대학교 관광학부 학생들이 ‘2014 경남도 전통주 소믈리에&칵테일 대회’에서 도지사상 등을 받은 후 상장을 들어 보이고 있다. 경남대학교 관광학부 Green & Blue 융합형 관광전문인력 ...

  • 누룩
  • 2014-11-25
  • 조회 수 2937

전남도, 남도 전통술 품평회 통해 11종 선발

[호남타임즈=백대홍기자]전라남도가 ‘2012년 남도 전통술 품평회’를 통해 지역을 대표하는 명품 술로 순천 팔마탁주 ‘친구사이’ 등 남도명주 11종을 최종 선발했다. 품평회는 지역을 대표하는 18개 전통술 제조업체에서 22개 제품이 출품돼 나름대로 전통비법...

  • 약손
  • 2012-09-18
  • 조회 수 2901

[즐거운 설]전통주와 주스의 환상적 만남, 힐링酒에 피로가 싹 [1]

● 명절 ‘건강 음주’ 칵테일이 뜬다 설 명절 전통주를 마실 때 과음은 금물이다. 막걸리나 전통주로 칵테일 한 잔을 마시면 건강과 웰빙의 상쾌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때 파전이나 견과류를 곁들이면 더욱 멋이 난다. 싱글몰트 위스키인 글렌피딕에 물과 ...

  • 누룩
  • 2013-02-08
  • 조회 수 2899

제조 금지부터 막걸리 팥빙수까지… 막걸리 변천사

현대사로 보는 막걸리 변천사 우리나라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김치가 있다. 김치가 대표적인 이유는 김치가 가지고 있는 상징성, 그리고 국민 통합이라는 미학이 있다. 아무리 유명한 정치가든 기업의 총수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김치라는 ...

  • 누룩
  • 2013-06-27
  • 조회 수 2897

꽃 향기를 품은 ‘전통주·위스키·맥주’ 활짝 폈다.

에스테르 화합물 술 숙성 과정서 향기 내 국화·매화 등 100% 꽃잎 쓴 전통주부터 원액 숙성 시킨 위스키·맥주 등도 인기 꽃향기를 품은 술이 주목받고 있다. 술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에스테르 화합물은 꽃향기와 유사한 향을 낸다. 또 원료가 자...

  • 누룩
  • 2014-05-14
  • 조회 수 284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