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뉴스

쨍!한 아름다움, 술잔의 과학

조회 수 1705 추천 수 0 2015.03.06 14:36:57

[매거진 esc]
주종과 술잔의 궁합 검증 실험…
잔의 크기와 상관없이 한잔의
알코올 도수는 비슷해

“산미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타이 음식 전문 술집 ‘반피차이’의 허혁구 셰프가 막걸리를 소주잔에 마시고는 한마디 한다. 소믈리에이기도 한 허씨는 지난 2월26일 전통주 유통회사인 부국상사 김보성 대표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맥주를 양주잔에, 막걸리를 와인잔과 소주잔에, 와인을 막걸리잔과 소주잔에, 소주를 와인잔에 부어 마셨다. 김씨는 막걸리를 소주잔에 마시고는 “왜 사발에 마시는지 알겠다. 밍밍하다”고 말한다. 와인잔에 붓자 “양이 소주잔보다 마음에 들고 향이 소주잔보다 피어오른다”고 말한다. 와인을 작은 소주잔에 넣으면 어떨까? 허씨는 “와인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없고 향도 사라진 거 같다”고 말한다. 이어 와인을 막걸리잔에 붓고는 “잔이 짙은 색이라 시각적인 즐거움이 없고 향도 충분하지 않아서 맛이 없어 보인다”고 평한다.

이 실험은 ‘왜 술마다 술잔이 다 다를까?’라는 의문점에서 시작됐다. 술의 마지막 미학은 잔이다. 잔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

같은 날 오후 1시께 서울 63빌딩 시더룸에 오스트리아의 와인잔 제조업체 리델의 회장인 게오르크 리델이 나타났다. 입구가 좁고 볼록한 모양의 와인잔을 리델이 1756년에 내놓기 전에 와인잔은 물잔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테이블에는 모양이 다른 빈 와인잔 3개와 플라스틱 컵에 담긴 3잔의 와인이 있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와인들은 각각 껍질의 두께가 다른 포도 품종으로 만든 것들이다. “1번 플라스틱 컵에는 피노누아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있습니다. 그걸 1, 2, 3번 잔에 부어 향을 맡고 맛을 보세요.” 200여명의 청중이 잔을 들었다. 입구의 지름은 술이 닿는 혀의 위치를 정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입구가 좁은 잔은 목을 더 꺾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혀의 뒤쪽에 와인이 닿게 됩니다.” 소주잔도 이와 비슷한 원리다. 목구멍 쪽으로 소주가 떨어진다. 국순당 연구소 신우창 소장은 “소주를 입안에 오래 머금고 음미할 수는 없다.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빨리 넘어가도록 하기 위해 잔이 작다”고 말한다. 반면 입구가 넓은 잔은 혀의 앞쪽에 술이 떨어지면서 넓게 퍼진다.

와인 향의 차이는 확연했다. “1번 잔에서 풍긴 과일 향은 3번 잔에서는 사라지고 풀 같은 향이 날 거예요.” 회장은 와인잔 테스트가 끝나자 코카콜라를 싱글몰트위스키 잔과 비슷하게 생긴 잔에 부으라고 한다. 리델은 지난해 코카콜라 전용 잔을 출시했다. 플라스틱 컵에서 크게 보였던 콜라의 물방울이 전용 잔에서 사라진다. “플라스틱 컵은 표면이 거칠어서 방울이 커진다. 코카콜라 전용 잔은 샴페인 잔 생산 기술을 활용했는데 거품이 줄고 콜라의 상쾌한 맛을 더 강조하도록 설계됐다. 잔 안을 미세하게 긁어 놓아 섬세한 거품을 유지한다.”

1700년대 중반
지금의 와인잔 첫등장
막걸리든 약주든
한잔에 담긴 알코올은 8~10㏄

이날 행사에 참여한 회사원 최원규씨는 “향은 액체가 증발하면서 전달되는데 우리는 잔의 위쪽에서 잔의 지름에 따라 달라진, 무게가 다른 냄새 분자를 맡는다. 잔의 형태에 따라 같은 와인이라도 다른 느낌의 향을 맡게 되는 이유”라고 소감을 말했다. 와인잔은 볼록한 부분에 향을 응축시키고 좁은 입구로 그 향을 가둔다. 몇 번 잔을 돌려 그 문을 연다. 싱글몰트위스키나 코냑처럼 향이 강한 술은 잔의 입구가 대부분 좁다. 최씨는 플라스틱 컵의 콜라는 레몬이나 라임향이 나는데 전용 잔을 몇 번 와인잔을 돌리듯이 돌리자 오렌지 향이 난다면서 신기하다는 평을 했다. 그는 전세계 와인 양조장 투어만도 11번 하고 맥주, 전통주, 와인까지도 양조한 경험이 있는 술 전문가다. 벨기에, 독일 등 맥주양조장 여행도 이미 여러 차례 했다.

(왼쪽부터) 주석잔, 소규모 양조장 제조 맥주잔, 싱글몰트위스 키잔.
코냑, 크래프트 비어(소규모 수제 양조맥주), 와인, 테킬라, 막걸리, 싱글몰트위스키 등 술의 전용 잔 수십 가지를 보유한 그의 집에 찾아가 다양한 잔들을 둘러보았다. “맥주는 거품이 맛에 영향을 미친다. 질 좋은 맥주잔은 거품을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크롬바허(크롬바커) 필스’를 전용 잔에 따르고는 설명을 잇는다. “거품이 계속 올라오다가 위로 모인다. 입구가 좁기 때문이다.” 독일이나 벨기에의 맥주양조장들은 전용 잔을 만든다. 대나무처럼 길쭉한 것부터 와인잔처럼 볼록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고 용량 표시도 되어 있다. “잔 자체의 두께가 얇을수록 입술에 닿는 촉감이 섬세해 고급 잔이다. 와인잔도 마찬가지다. 고급 잔일수록 종이처럼 얇다. 잔끼리 부딪히면 ‘쨍’ 하는 소리가 아니라 ‘팅’ 하는 울림이 들린다.” 대형 주류회사에서 무료로 업소에 제공하는 맥주잔들은 두껍고 큰 편이다. 쉽게 깨지는 것을 방지하고 많은 양의 술을 먹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2000년대 생긴 하우스맥주점들은 초창기 주석 잔을 많이 사용했다. 차가운 성질이 오래가기 때문이다. 레이저로 타공하는 잔도 있다. 아일랜드 에일맥주인 ‘스미딕스’에는 육안으로 식별이 힘들지만 잔 아랫부분에 레이저로 타공한 부분이 있다. 작은 공기구멍과 같은 구실을 해서 맥주의 상쾌한 맛을 유지시킨다고 한다.

잔마다 다른 술맛 시음회를 한 김보성(왼쪽) 대표와 허혁구 셰프.
샴페인 잔은 좁고 길다. 국순당 연구소 신우창 소장은 “샴페인은 탄산이 많다. 탄산의 증발 속도를 늦추고 오래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좁고 긴 샴페인 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영국 출신 톱모델 케이트 모스는 자신의 왼쪽 가슴 모양을 본뜬 샴페인 잔을 제작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의 가슴 모양으로 샴페인 잔을 만든 사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샴페인을 담는 부분의 높이가 짧고 지름이 넓다. 칵테일 잔도 이런 다채로운 감각을 입는다. 칵테일 전문 바 ‘르 챔버’ 대표 엄도환씨는 “바텐더들은 계속 창작 칵테일을 만든다. 그 칵테일에 맞는 잔을 찾는다. 보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공동 대표인 박성민씨는 “손에 닿았을 때의 질감과 온도를 고려해 잔을 고른다. 와인잔보다 감성적”이라고 한다. 바텐더에게 잔은 도화지다.

소주잔은 한번에 털어 넣는 우리 술 문화와 관련이 있다. 지름이 3~3.5㎝로 작다. 막걸리는 주로 흙으로 빚은 도자기 잔이나 사발에 마신다. 불투명한 막걸리는 굳이 와인이나 코냑처럼 색을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약주잔은 4~5㎝ 정도로 소주잔보다는 크고 막걸리잔보다는 작다.

지난달 26일 오스트리아 와인잔 제조업체 리델의 게오르크 리델 회장이 와인잔 시음회에서 와인의 향을 맡고 있다.

잔의 크기는 알코올 도수와 관계가 있을까? 조금 더 과학적인 접근을 해보자. 신우창 소장은 관련 있다고 대답했다. 어떤 종류의 술이든 한 잔을 마셨을 때 우리가 섭취하는 알코올 양은 비슷하다. “알코올 도수가 6도인 막걸리 한 잔은 보통 150㎖다. 12.5도인 백세주는 한 잔이 70㎖다. 각각의 알코올 도수를 100%로 환산하고 양을 계산하면 두 술 모두 우리가 섭취하는 알코올은 대략 9㏄다.” 한 잔을 마신다고 했을 때 어떤 술이든 8~10㏄의 알코올을 마시는 셈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잔의 크기가 결정된다. “건강이나 몸에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고 본 거다.” 온도와도 연관성이 있다. “라거맥주는 술의 온도가 낮고 에일맥주는 높다. 약재가 든 술은 지나치게 온도가 높으면 풍미를 못 느낀다. 8~10도가 적당하다.” 온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신 소장은 “우리 전통주는 주로 나무잔이나 사기그릇에 마셔왔다. 잔은 진화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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