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뉴스

[아시아,대한민국] 전주의 장인들 Part 2

조회 수 1407 추천 수 0 2019.07.16 16:24:35

주인은 너무 권하지 말고, 객은 너무 사양하지 말라. 이는 바로 우리의 전통 술 문화였지요.

마이크로브루어리를 넘어 이제는 홈 브루잉 시대다. 직접 홉을 넣어 끓이고, 숙성 과정을 연구하며 에일 맥주를 만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다른 누군가는 누룩을 발효시켜 막걸리 등 전통주를 손수 빚는다. 사실 이런 홈 브루잉 문화는 우리 나라 전통의 일부였다. 각 가정에서 술을 빚는 가양주(家釀酒)로 말이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 지역의 명문가는 제사와 차례를 위해 집안 대대로 전수되어온 술을 정성껏 만들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에 주세를 부과하기 시작하면서 가양주는 순식간에 몰락하고 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전통주를 되살리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당시 안동소주, 문배주, 이강주가 최초의 민속주로 선정되며 가양주의 부활을 알렸다. 그중 전주의 이강주(梨薑酒)는 최남선 시인이 <조선상식문답>에서 평양의 감홍로(甘紅露), 전라도의 죽력고(竹瀝膏)와 함께 조선의 3대 명주라 치켜세운 최고의 전통 소주다.

“6대조 선친이 완주 부사를 지냈어요. 당시 저희 집안에선 수많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이강주의 전신 격인 이강고(梨薑膏)를 빚었죠.” 대를 이어 오늘날 전주 이강주를 복원한 조정형 명인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름 그대로 배(梨)와 생강(薑)의 즙을 꿀과 섞어 소줏고리에 중탕하는 이강주는 입안을 맴도는 달콤 쌉싸름한 향이 특징이다. 조정형 명인은 이강주를 되살리기 전까지 주류 회사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 그러다가 불쑥 회사를 관두고 우리나라의 술을 제대로 체험하기 위해 2년간 전국을 유랑했다. 대학교 농화학과에서 발효학을 공부한 것까지 포함해 한평생을 술과 함께 살아온 셈이다. 그런 파란만장한 이력은 집안 대대로 이어져 온 이강주를 복원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물론 연간 80톤을 생산하는 오늘날의 이강주는 가양주라 부르기엔 규모가 제법 크다. 전주에 있는 제1공장에서는 오로지 이강주 생산에 집중하고, 완주의 외딴 산골짜기에 세운 제2공장에선 이강주의 미래를 모색하는 중이다. “제2공장에서는 이강주에 오디를 가미한 이강 브랜디와 와인, 가루 술 등을 연구하고 생산하죠. 또 이강주 박물관을 함께 운영해 방문객이 둘러볼 수 있도록 했어요.” 제2공장의 박물관에는 이제껏 그와 그의 집안이 대대로 모아온 술잔과 기구, 술병, 소품 등 술과 관련한 1,300여 개의 물품이 빼곡하게 진열되어 있다. 벽에 걸린 그의 선친이 남긴 문장도 눈에 띈다. ‘주불강권 객불고사(主不强勸 客不固辭)’. “주인은 너무 권하지 말고, 객은 너무 사양하지 말라. 이는 바로 우리 전통 술 문화였지요.” 조정형 명인이 명쾌하게 문장을 풀어낸다.

“기회가 되면 한번 이강주와 맥주를 섞어서‘이맥’으로 만들어 마셔봐요. 놀라울 정도로 맛이 부드럽죠.” 조선 고종 때 한미통상회담의 대표주로 올랐다거나 조선 상류층이 즐겨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이강주를 가볍게 즐겨보라고 권하는 조정형 명인이 공장의 바깥 공간으로 안내한다. 거대한 스테인리스 탱크에서는 이강 브랜디를 숙성시키고, 주변의 빈 공터 아래로 저장 탱크를 묻어뒀다. “이강주로 만든 브랜디를 땅속 깊숙이 묻어 숙성시키고 있어요. 맛의 변질을 막기 위해 살균 대신 숙성을 택한 거죠. 또 매년 시음하면서 맛의 변화를 꼼꼼하게 분석하는 중입니다.” 그가 한평생 술에 바친 애정과 호기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강주 제2공장 063 243 5768, 전북 완주군 신지송광로 619-12.

비단 베틀을 짠다는 생각으로 곱게 만든 비빔밥 한 그릇에는 온갖 정성과 지식이 담겨 있죠.

완산구 경원동에 있는 가족회관은 전주 현지인이라면 한결같이 자부심을 갖는 곳이다. 여기엔 전주 최초의 음식 명인이자 대한민국 식품 명인으로 선정된 김년임 명인의 이름값이 한몫했다. 그녀는 과거 관사에서 음식을 만들던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 1970년대 옛 공보관 건물 2층에 가족회관 문을 열었다.

김년임 명인이 전주비빔밥을 시작한 계기는 명료하다. “저는 참 복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전주에는 호남평야의 우수한 쌀이 지척에 널려 있죠. 게다가 인근 산야에는 두릅, 더덕 등 질 좋은 식자재 천지예요.” 황포묵, 육회, 산나물 등 형형색색의 서른 가지 이상 고명이 올라간 가족회관의 비빔밥은 40여 년간 같은 맛과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밥은 사골 육수로 짓는데, 이는 쌀알을 코팅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수십 가지의 나물과 밥을 비빌 때 서로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한 묘수다. “비빔밥은 식자재와 식감 모두 중요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시각적으로 훌륭한 음식이어야 하죠. 전 비단 베틀을 짠다는 생각으로 재료 선택에 많은 공을 들여요. 곱게 만든 비빔밥 한 그릇에는 온갖 정성과 지식이 담겨 있는 셈이죠.” 황동빛이 감도는 놋그릇은 무형무화재 김선익 명인이 제작한 것이다. 놋그릇은 시각적으로 멋스럽기도 하거니와 채소나 고기가 쉽게 상하지 않도록 세균을 잡아주는 역할도 한다.

가족회관은 개업 초기부터 오픈형 주방으로 운영했다. “처음에는 손님들이 주방 직원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것을 낯설어했어요. 하지만 손님이 조리 과정을 직접 지켜볼 수 있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 생각했죠.” 스무 명 남짓한 주방과 홀의 직원은 이른 아침부터 일사불란하게 손님맞이에 나선다. 식당의 문을 열고 사람들이 물밀듯이 들어오자, 차곡차곡 쌓여 있는 놋그릇에 곱디고운 비빔밥을 척척 담아낸다.

김년임 명인은 여전히 매일 아침 가족회관으로 출근하지만 현재 이곳의 실질적인 운영자는 딸 양미 씨다. 그녀는 전주비빔밥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고 연구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한국전통문화관에 뷔페형 비빔밥 레스토랑 부•×쩜 운영하는가 하면, 최근 한옥마을에 테이크 아웃 비빔밥을 선보이는 믹스밥도 열었다. “전주비빔밥은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많은 외국인에게도 익숙한 음식이 됐지요. 이제는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응용 가능한 비빔밥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가족회관이 지켜온 전주비빔밥의 영역은 그렇게 대를 이어 한 단계 더 진화하는 중이다.

가족회관 전주비빔밥 1만2,000원, jeonjubibimbap.com

글. 고현 사진. 김경수

출처 : http://lonelyplanet.co.kr/magazine/articles/AI_00000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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