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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프에 빠진 ‘전통주’ 막걸리 “사케·와인에 밀려…규제 풀고 경쟁해야”

조회 수 5313 추천 수 0 2013.01.28 16:15:54

‘전통주’ 막걸리가 슬럼프에 빠졌다. 지난해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막걸리가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11년 거세게 불었던 막걸리 열풍이 무색할 정도다. 국내 막걸리 시장은 지난해 2006년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시장 규모가 감소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막걸리 출하량은 37만1000㎘로 전년 동기(39만5000㎘) 대비 5.8% 줄어들었다. 급성장세를 구가하던 수출도 된서리를 맞았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수출은 3500만 달러어치, 2700만 리터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8.7%, 29.5% 급감했다.

수출액이 2010년 204.2%, 2011년 176% 급증했던 것에 비하면 충격적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추세는 올 1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막걸리 세계화를 내걸고 수출과 내수 모두 호황을 누리던 막걸리 인기가 급락하고 있는 것이다.

막걸리 시장이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업체들은 프리미엄 막걸리와 2030세대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 종로구 백세주마을에서 막걸리를 즐기고 있는 젊은이들.


막걸리가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뭘까. 우선 와인·사케·수입맥주 등 수입 저도주에 그 자리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직수입된 사케 물량은 410만 리터로 작년 동기(240만 리터)보다 70.2% 증가했다. 수입액은 1400만 달러로 8.8% 늘었다. 수입량이 급증하며 수입 단가는 36.1% 하락했다. 맥주와 와인의 수입량도 각각 23.6%, 16.4% 늘어났다. 맥주는 6700만 리터, 와인은 2600만 리터가 수입됐다.

업계에서는 작년 봄철 이상 고온 현상과 가뭄 등 날씨가 직접적인 영향을 준 데다 새로운 소비층인 20~30대를 잡을 만한 신제품이 없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국순당 관계자는 “해외여행이나 유학을 경험한 20~30대 연령층은 막걸리보다 수입 맥주를 먼저 찾고 취하기보다 즐기는 음주 문화를 선호한다”며 “페트병 모양의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술 자체는 우수하다고 하더라도 품질관리나 병 디자인 등이 크게 개선된 게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일명 ‘소맥’이 유행하면서 상대적으로 막걸리를 찾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내수뿐만 아니라 수출까지 감소한 것은 작년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반한류 정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의 한국 식품 가게들은 반한 시위가 빈번하면서 매출이 뚝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일본 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는 우리술은 2011년 수출액 350만 달러에서 지난해 270만 달러로 감소했다. 이 회사 박성기 사장은 “독도 문제가 불거진 하반기에는 수출량이 급감했다”며 “이 같은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일본 현지에서 생막걸리가 인기를 얻으면서 수출품인 멸균 막걸리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 식품을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는 B&플래너의 백상철 대표는 “일본 현지에서 생막걸리 제조 공장이 늘어나고 있다”며 “유통기간상 멸균 막걸리를 수출할 수밖에 없는 한국 기업들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막걸리 업체들이 영세하다는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침체의 원인을 찾는다. 국내 막걸리 시장은 약 5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장수막걸리로 전국 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서울탁주제조협회와 국순당·부산탁약주제조협회·우리술 등 일부 대형 업체를 제외하곤 규모가 영세한 편이다.
 
전국 800여 개의 업체 중 연간 10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리는 업체는 6.7%에 불과하다. 1억~10억 원 미만이 27.1%, 1억 원 미만이 66.2%나 된다. 이 때문에 일부 선두 업체를 제외하고는 연구·개발이나 시설 투자에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품의 다양성이나 품질 면에서 소비자들의 신뢰를 지속적으로 얻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 밖에 막걸리는 중소기업 적합 업종으로 분류돼 대기업 투자가 막혀 있는 것도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용기 크기를 줄인 LTE형 막걸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사진은 우리술의 스포츠 막걸리 ‘미쓰리’ 출시 행사.


2030세대 공략에 주력

그러면 전통주인 막걸리 부활의 조건은 뭘까. 업계는 프리미엄 전략과 젊은층 공략에 서 돌파구를 찾고 있다.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에서 가장 적극적인 곳은 국순당이다. 작년 6월 출시된 ‘국순당 옛 막걸리’는 막걸리로는 고가인 2000원(대형 유통점 기준)에 판매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국순당은 ‘국순당 옛 막걸리’를 비롯해 5000원대의 스파클링 막걸리 ‘오름’과 2000원대의 국내산 복분자·오미자·더덕 등을 원료로 사용한 ‘자연담은 막걸리’ 등을 선보였다. 이 밖에 배혜정주가의 ‘탁테일’, ‘송산포도 생막걸리’, 천삼주가의 ‘천삼막걸리’ 등 20여 종의 프리미엄급 신제품이 쏟아져 나왔다.

사케와 와인을 선호하는 2030세대를 겨냥한 신제품 출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이른바 4세대 ‘LTE’형 제품으로 젊은이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LTE’형은 주전자형(1세대), 페트병형(2세대), 전국 냉장 판매형(3세대)에 이어 적은 양(Little), 상큼하게(Tasty), 편한 용기(Easy) 등으로 요약되는 4세대형을 뜻한다. 4세대 막걸리는 휴대가 간편한 ‘캔’ 용기를 사용하고 3세대 막걸리의 절반 이하인 350ml로 한 번에 마시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이른바 RT D(Ready To Drink) 제품이다. RTD 제품은 저알코올, 소형 포장, 마시기 편한 과즙 첨가, 청량감 증대 등으로 간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이다. 이미 와인 시장은 소형 포장과 팩 제품 등이 출시돼 인기를 얻고 있다. 페트병 대신 캔으로 포장된 국순당의 ‘아이싱’은 4세대 막걸리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톡톡 튀는 탄산과 상큼한 자몽 과즙 맛을 구현한 데다 알코올 도수를 기존 막걸리(6도)보다 2도 낮은 4도로 했다.
 
‘아이싱’은 출시 3개월 만에 300만 캔이 판매되는 등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탁주·우리술 등은 아예 알코올 도수를 3도로 내리고 청량감을 살린 캔 막걸리 ‘이프’와 ‘미쓰리’ 등을 작년 말에 내놓았다. ‘이프’는 알코올 도수를 3도로 낮추고 달콤한 향과 맛에 청량감을 더했다. ‘미쓰리’는 쌀로만 빚은 ‘미쓰리 블루’와 유자 과즙을 첨가한 ‘미쓰리 그린’ 등 2종으로 구성돼 있다.

대기업 시장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배중호 국순당 사장은 “막걸리는 우수한 술이지만 병 디자인이나 품질관리 등은 1980년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더 이상 막걸리 업체 간 경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막걸리 대 맥주, 막걸리 대 와인의 경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 사장은 “대기업은 표준화된 제품을 저렴하게 대량생산하고 중소기업은 특화 제품을 만들면 전체 전통주 시장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민정 KTB투자증권 애널리스트도 “막걸리가 살아나려면 시장 규제를 풀어 대기업이 들어와야 한다”며 “그래야만 고급화를 통해 사케 와인 등과 경쟁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막걸리의 날’ 지정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11년 막걸리에 항암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연구 결과에 따라 막걸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던 것처럼 막걸리에 대한 기능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연구, 한식과 함께 문화 상품으로 해외에 소개하는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지역 특유의 스토리를 입히는 등 전통주도 와인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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