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뉴스

[한겨레][ESC] 아마 세종대왕도 즐겨 마시지 않았을까?

조회 수 998 추천 수 0 2020.01.29 15:07:17

'2019 우리술 품평회’ 대통령상 받은 ‘세종대왕 어주’
<산가요록> 주방문에 저온숙성 기법 더해
깊고 단정한 맛에 고급스러운 향 올라와
미쉐린 가이드 레스토랑에도 잇달아 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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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청주 부문 대상과 함께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은 장희도가의 ‘세종대왕 어주’ 약주(사진 오른쪽). 사진 장희도가 제공


“갑자기 택배 주문이 늘었지 뭡니까. 혼자 보내는 게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네요.” 주문이 밀려들어 곤란하다면서도 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지난 15일 오후 충북 청주시 청원구의 장희도가에서 만난 장정수(63) 대표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장 대표와 그의 아내이자 발효전문가인 김주희(62)씨가 함께 운영하는 장희도가의 ‘세종대왕 어주’가 지난해 11월 ‘2019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 약·청주 부문 대상과 함께 대통령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구매는 3배 가까이 늘었고, 술을 달라는 유명 레스토랑도 줄을 이었다. <미쉐린 가이드>(미슐랭 가이드) 3스타 레스토랑인 서울신라호텔 라연, 1스타 레스토랑인 에빗에서도 ‘세종대왕 어주’를 들였다.


찐 고두밥을 펼치는 장정수 대표의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다. 법인 장희도가를 세운 지는 8년. 평생 사무직에 종사했던 그지만 많은 게 바뀌었다. “맨땅에 헤딩이었죠. 펜만 굴리고 살다가 완전히 육체 노동자자 되었죠.” 이제야 웃지만, 지난 3년은 고된 나날이었다. “처음에 술을 빚어 청주의 직거래 장터에서 파는데, 잘 안 팔렸어요. 내 입맛에는 맛있는데…. 내가 좋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죠.” 장희도가를 세운 뒤 ‘장희약주’, ‘연풍가향’ 등을 만들었지만,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그 뒤 만든 술이 ‘세종대왕 어주’다. “약주를 만들었는데 이름을 지어야 했어요. 원래는 ‘어사주’로 할까 했는데, 지인들과 수다를 떨던 중에 그중 한 명이 ‘어주 어때?’라고 했습니다. 마침 우리 양조장과 가까운 곳인 초정리(청주시 내수읍) 인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창제를 마무리할 즈음 안질 등을 다스리기 위해 머물던 ‘행궁’(왕의 별장)이었던 게 생각났죠. 모든 게 딱 맞아 떨어지는 이름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어의 전순의가 남긴 <산가요록>, 세종대왕이 머물던 행궁, 세종대왕이 안질을 치료하기 위해 썼다는 ‘초정리 광천수’. 운명 같은 우연이었다. 그렇게 세종대왕 어주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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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수(63) 장희도가 대표가 세종대왕 어주를 들고 문재인 대통령 서명이 있는 우리술 품평회 대통령상 상장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이정연 기자

‘세종대왕 어주’는 의외의 면이 많은 술이다. 술 빚는 장정수 대표의 이력도 의외였다. 그는 2011년에야 전통술 사업에 뛰어들었다. 장 대표는 서울에서 재활병원을 세워 운영하던 의료법인 행정가, 사업가였다. 그는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고향으로 가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의 고향이 청주다. 그중에서도 초정리 광천수로 이름 높은 ‘초정리’에 가까운 곳에서 나고 자랐다. “어렸을 때 마셔봤던 광천수 맛이 아직도 기억나요. 탄산이 톡톡 터지며 혀끝이 따가울 정도였죠.” 서울에서 사업을 하면서도 취미로 술 빚기를 일삼던 그는 물 좋기로 이름난 고향으로 돌아가 ‘술 빚기’로 사업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장 대표와 김주희씨는 전통주 학교로 이름 높은 ‘수수보리아카데미’와 ‘가양주연구소’ 등에서 술을 배웠다. 장 대표는 “2년 정도 술 빚기를 열심히 배웠다. 청주와 서울을 오가며 술 빚기를 하던 때도 있었는데, 술통의 효모(당을 흡수해 이산화탄소와 알코올을 만드는 미생물)가 굶으면 안 되니까 차에 싣고 다니면서 효모 밥을 줘 발효하곤 했다”라고 말했다.


술맛을 보고 난 뒤 성분표를 보면 또 하나 의외의 사실에 놀란다. 이 술에는 오로지 청주 인근 지역의 멥쌀과 찹쌀, 초정리 광천수가 들어가고 약간의 누룩만 더해졌을 뿐이다. 세종대왕 어주에 약초가 들어갔다느니 하는 정보가 항간에 떠도는데, 전혀 아니다. 깊고 단정한 맛이 혀 전체를 감싸면서 살짝 달곰하고 쌉싸래한 고급스러운 향이 올라오는데 이 향이 마치 약초의 향 같아 떠도는 이야기다. “한 달 가까이 저온숙성을 하면 이 향이 올라옵니다. 술을 갓 내렸을 때는 향이 없는데 저온숙성 들어가면서 향과 맛이 증폭되지요. 이 과정을 거치면서 술맛이 매우 부드러워집니다.” 장 대표는 조선 초기 전순의가 지은 고서적 <산가요록> 속 ‘벽항주’의 주방문(술 빚는 법)을 좇아 세종대왕 어주를 만들었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기술을 더했다. 전통주 양조장이니만큼 흙으로 빚은 항아리에 술이 담겼으리라 생각했는데, 모든 술은 스테인리스 술통에 담겨있었다. 저온숙성에 적합한 데다, 모든 주조 과정을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편이라고 한다. 찹쌀로 찐 고두밥을 펼쳐 식히기 위해 양조장으로 향하는 장 대표를 따라나서자 그가 “위생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원래 여기엔 사람을 거의 들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한 달에 1500병의 약주와 500병의 탁주를 생산하는 양조장 내부는 과연 곳곳이 반짝거릴 정도로 깔끔했다.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해썹) 인증을 염두에 두고 양조장을 만들었다”라고 장 대표는 설명했다.


세종대왕 어주는 그 향이 이색적이지만, 단연 깔끔한 맛을 자랑한다. ‘2019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의 심사위원단은 “누룩에서 오는 이취(누룩 냄새)를 최대한 줄였고, 과일 향과 청량함을 느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어떤 방법과 비결이 있냐고 묻자 장 대표는 “술 빚는 방법은 아내도 모른다”며 웃으며 대략적인 술 빚기 방법을 설명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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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장에서 1차 발효 전 찐 고두밥을 식히기 위해 펼치고 있는 장정수 장희도가 대표. 사진 이정연 기자

 세종대왕 어주는 ‘삼양주’다. 말 그대로 3번 담그는 술이다. 1차로 밑술을 담가 발효하고, 2차로 발효한 밑술에 덧술을 더해 다시 발효 과정을 거친다. 그 뒤 누룩 지게미를 걸러낸 뒤 다시 덧술을 더해 발효한다. 발효를 완전히 마친 뒤 내린 술을 저온숙성 시킨다. 이렇게 해서 알코올 도수 18도 정도의 술이 되면 지역 약수와 섞어 알코올 도수를 15도로 만드는 과정을 거친다. 그 다음 물과 술이 따로 놀지 않고 잘 섞이도록 일주일 이상 숙성한다. 전통주를 빚는 데 쓰이는 ‘누룩’은 ‘밀’로만 만든 누룩을 쓴다고 했다. 직접 띄운 밀 누룩과 외부에서 가져온 밀 누룩을 섞어 쓴다. 그는 누룩에 있어서는 ‘과유불급’의 원칙을 내세운다. “누룩을 너무 많이 쓰면 술맛이 거칠고, 색깔도 좋지 않다. 그래서 들어가는 누룩의 양을 많이 줄였다. 드라이하고 깔끔한 맛이 나는 이유 중에 하나다”라고 장 대표는 설명했다.

장정수 대표가 우리 술 빚기에 매진한 지 9년을 맞았다. “우리 술을 만들려면 고집스러워야죠. 그렇지 않으면 길게 가지 못할 겁니다.” 길게 보고, 큰 그림을 그리는 장 대표는 고집스럽게 지역 공동체와 함께 나아갈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2013년엔 유기농 농산물을 모아 파는 ‘지구농부협동조합’을 꾸리기도 했고, 지난해 전통주 교육기관으로 인증받기도 했다. “제가 만든 술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시설은 더 늘리지는 않으려고 합니다. 술맛과 품위를 지키면서 가고 싶거든요. 전통주 도매상들이 자꾸 제안을 합니다. 양을 늘려보자고. 그런데 안 합니다. 술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명절 때 많이 내다 팔려고 욕심을 내면 꼭 망쳐요. 그저 앞으로도 좋은 술을 빚고 싶을 뿐입니다.” 좋은 술을 만들 만큼만 잘 팔렸으면 좋겠다는 장정수 대표, 그는 품평회에서 받은 상장과 술병에 붙인 ‘대통령상’ 스티커를어루만지며 한마디 보탰다. “이 상장에 적힌 이름(문재인 대통령)을 직접 쓰셨다고 하더라고요. 청와대 만찬주로 올라가 문 대통령께서 우리 술맛 한 번 보셨으면 좋겠네요.”



    

청주(충북)/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출처 : http://www.hani.co.kr/arti/specialsection/esc_section/9256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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