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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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주종과 술잔의 궁합 검증 실험…
잔의 크기와 상관없이 한잔의
알코올 도수는 비슷해
“산미가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타이 음식 전문 술집 ‘반피차이’의 허혁구 셰프가 막걸리를 소주잔에 마시고는 한마디 한다. 소믈리에이기도 한 허씨는 지난 2월26일 전통주 유통회사인 부국상사 김보성 대표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맥주를 양주잔에, 막걸리를 와인잔과 소주잔에, 와인을 막걸리잔과 소주잔에, 소주를 와인잔에 부어 마셨다. 김씨는 막걸리를 소주잔에 마시고는 “왜 사발에 마시는지 알겠다. 밍밍하다”고 말한다. 와인잔에 붓자 “양이 소주잔보다 마음에 들고 향이 소주잔보다 피어오른다”고 말한다. 와인을 작은 소주잔에 넣으면 어떨까? 허씨는 “와인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가 없고 향도 사라진 거 같다”고 말한다. 이어 와인을 막걸리잔에 붓고는 “잔이 짙은 색이라 시각적인 즐거움이 없고 향도 충분하지 않아서 맛이 없어 보인다”고 평한다.이 실험은 ‘왜 술마다 술잔이 다 다를까?’라는 의문점에서 시작됐다. 술의 마지막 미학은 잔이다. 잔에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걸까?같은 날 오후 1시께 서울 63빌딩 시더룸에 오스트리아의 와인잔 제조업체 리델의 회장인 게오르크 리델이 나타났다. 입구가 좁고 볼록한 모양의 와인잔을 리델이 1756년에 내놓기 전에 와인잔은 물잔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테이블에는 모양이 다른 빈 와인잔 3개와 플라스틱 컵에 담긴 3잔의 와인이 있다. 플라스틱 컵에 담긴 와인들은 각각 껍질의 두께가 다른 포도 품종으로 만든 것들이다. “1번 플라스틱 컵에는 피노누아르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 있습니다. 그걸 1, 2, 3번 잔에 부어 향을 맡고 맛을 보세요.” 200여명의 청중이 잔을 들었다. 입구의 지름은 술이 닿는 혀의 위치를 정한다고 그는 설명한다. “입구가 좁은 잔은 목을 더 꺾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혀의 뒤쪽에 와인이 닿게 됩니다.” 소주잔도 이와 비슷한 원리다. 목구멍 쪽으로 소주가 떨어진다. 국순당 연구소 신우창 소장은 “소주를 입안에 오래 머금고 음미할 수는 없다. 머무는 시간을 줄이고 빨리 넘어가도록 하기 위해 잔이 작다”고 말한다. 반면 입구가 넓은 잔은 혀의 앞쪽에 술이 떨어지면서 넓게 퍼진다.지금의 와인잔 첫등장
막걸리든 약주든
한잔에 담긴 알코올은 8~10㏄이날 행사에 참여한 회사원 최원규씨는 “향은 액체가 증발하면서 전달되는데 우리는 잔의 위쪽에서 잔의 지름에 따라 달라진, 무게가 다른 냄새 분자를 맡는다. 잔의 형태에 따라 같은 와인이라도 다른 느낌의 향을 맡게 되는 이유”라고 소감을 말했다. 와인잔은 볼록한 부분에 향을 응축시키고 좁은 입구로 그 향을 가둔다. 몇 번 잔을 돌려 그 문을 연다. 싱글몰트위스키나 코냑처럼 향이 강한 술은 잔의 입구가 대부분 좁다. 최씨는 플라스틱 컵의 콜라는 레몬이나 라임향이 나는데 전용 잔을 몇 번 와인잔을 돌리듯이 돌리자 오렌지 향이 난다면서 신기하다는 평을 했다. 그는 전세계 와인 양조장 투어만도 11번 하고 맥주, 전통주, 와인까지도 양조한 경험이 있는 술 전문가다. 벨기에, 독일 등 맥주양조장 여행도 이미 여러 차례 했다.
(왼쪽부터) 주석잔, 소규모 양조장 제조 맥주잔, 싱글몰트위스 키잔. |
잔마다 다른 술맛 시음회를 한 김보성(왼쪽) 대표와 허혁구 셰프. |
지난달 26일 오스트리아 와인잔 제조업체 리델의 게오르크 리델 회장이 와인잔 시음회에서 와인의 향을 맡고 있다. |
잔의 크기는 알코올 도수와 관계가 있을까? 조금 더 과학적인 접근을 해보자. 신우창 소장은 관련 있다고 대답했다. 어떤 종류의 술이든 한 잔을 마셨을 때 우리가 섭취하는 알코올 양은 비슷하다. “알코올 도수가 6도인 막걸리 한 잔은 보통 150㎖다. 12.5도인 백세주는 한 잔이 70㎖다. 각각의 알코올 도수를 100%로 환산하고 양을 계산하면 두 술 모두 우리가 섭취하는 알코올은 대략 9㏄다.” 한 잔을 마신다고 했을 때 어떤 술이든 8~10㏄의 알코올을 마시는 셈이다. 이런 원칙에 따라 잔의 크기가 결정된다. “건강이나 몸에 크게 무리가 없는 수준이라고 본 거다.” 온도와도 연관성이 있다. “라거맥주는 술의 온도가 낮고 에일맥주는 높다. 약재가 든 술은 지나치게 온도가 높으면 풍미를 못 느낀다. 8~10도가 적당하다.” 온도를 잘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다. 신 소장은 “우리 전통주는 주로 나무잔이나 사기그릇에 마셔왔다. 잔은 진화하지 않았다. 과학적으로 접근해서 현대화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