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세계화의 길을 묻다]③영주 오정주

조회 수 1975 추천 수 2 2010.08.03 10:44:44




->백발이 검어지고 새 이가 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불로장생주 영주 오정주. 도자기병이 주도 35도짜리다.
->전통주 연구가인 오정주 제조자 박찬정 씨가 하회탈춤 인간문화재 이상호 씨와 오정주를 나누며 담소하고 있다.

[전통주, 세계화의 길을 묻다]③영주 오정주

'백발을 검게 하고 빠진 이도 다시 나게 한다'는 신비의 술이 바로 영주 오정주(五精酒)다. '온주법'과 '수운잡방' 등 온갖 전통음식 고서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오정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670년경의 문헌인 '요록'(要錄). 이 책엔 "오정주는 기가 허한 것을 치료하고 오랫동안 마시면 백발이 검게 되고(장복환흑) 해가 갈수록 수명이 늘어난다(연년익수)'고 기술돼 있다. 요즘 한창 방영되고 있는 MBC 드라마 '동이'의 시대적 배경이기도 한 조선 숙종 초기에 발간된 '요록'은 영주 오정주를 그야말로 불로장생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오정주를 4대째 이어오고 있는 전통주 연구가 박찬정(57·소백산오정주 대표) 씨는 오정주에 대한 기록을 '요록'에서 처음 읽고서 감격에 겨워 펑펑 소리내어 울었다고 한다. 어느 주류 제조업체에서 쓰고 있는 '불로장생' 스토리텔링 광고 카피의 실제 주인공이었던 영주 오정주를 찾아 400년 역사의 건강비주(秘酒) 우리술 이야기를 들어 본다.

◆사람을 살리는 술 오정주

전통주 연구가 박 씨를 찾아 나선 소백산오정주(ojungju.co.kr·영주 고현동) 귀내리 마을 도로변은 보랏빛 도라지 꽃이 한창이다. 하회탈춤 인간문화재 이상호(66) 씨는 불로장생주 오정주를 만나는 마음이 급한듯 일행을 이끌고 앞서 간다. "아니 이곳 귀내리는 옛날에도 선비 글 읽는 데 방해될까봐 과객들도 말에서 내려 조용조용 걸어 갔대잖아." 이 씨는 입에다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따라오라고 눈짓한다.

"어서 오세요. 이리로 드시지요." 일행을 맞는 도가 주인 박 씨는 조선 중종 때 사간원에서 대사간을 지낸 소고 박승임 선생의 15대 손이다. 얼굴은 40대 중반인듯 알려진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인다. 벽에 걸린 액자를 보고 이 씨가 '언제적 사진이냐'고 묻는다. 15년 전에 찍은 사진이라는 박 씨의 말에 화들짝 놀란다. 40대 초반인 그때나 50대 후반인 지금이나 거의 변하지 않은 모습이다. 흰머리 하나 없는 머리카락도 새카맣다. 오정주를 많아 마셔서인가? 근데 박 씨는 술을 마시지 않는단다. 술 맛을 볼 땐 입에 잠시 머금을 뿐이라는 것. '그럼 오정주 냄새만 맡아도 늙지 않는다?' 호기심 많은 이 씨는 갈수록 놀라는 표정이다.

"옥빛이라고도 해요." 은은한 연둣빛이 스며있는 듯한 오정주는 빛깔부터 약주임을 보여준다. 주도가 35도. 한잔을 입안에 물면 특유의 약초향이 혀끝에서 입안 전체로 회오리치듯 퍼진다. 둥그스름한 목넘김도 좋기만 하다. 취기는 아랫배부터 오른다. 아랫배가 뜨끈뜨끈해진다 싶으면 곧장 가슴으로 얼굴로 오른다. 깰 때는 언제 술을 마셨느냐는듯 자신도 모르는 사이 취기가 사라진다. 초화주와 마찬가지로 숙취가 전혀 없는 게 신기하다. "안동소주보다 주도가 좀 낮은 오정주는 차게 하면 훨씬 더 향이 살아나고 뒷맛이 가볍게 느껴집니다." 우리 전통주 연구가로 불리는 박 씨는 우리 술 빚기에도 통달한 사람이다. 고조리서를 번역하기 위해 한문공부까지 한 그는 서울에서 법대를 나왔다. 박 씨가 직장을 버리고 오정주 연구에 빠진 것은 1993년도부터.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온주법' 등 향토 고조리서는 물론이고 '임원육지' '증보산림경제' '양주방' '규합총서' '요록' '산해주방' 등 전통주를 기술한 국내 고서적이란 고서적은 다 섭렵하다시피 해 오늘에 이른다.

"어머니가 하던 옛 방식에다 고서를 참고해 오정주를 복원했습니다. 고서에도 술 빚는 비법은 꼭 재료 한 가지씩은 그 분량을 괄호를 쳐놓고 구체적으로 기술해 놓지 않아 다 이해하는 데 애를 참 많이 먹었지요."

고서에 나오는 용어를 다 풀어 보니까 그제야 오정주에 대한 감이 잡히더란다. 전통주에 인생을 건 박 씨는 전통주 고방(옛 발효법) 분야에선 국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다. 거의 10여 년을 하루 4, 5시간가량 자면서 발효공학 전공 대학생처럼 전통주에 대해 공부한 박 씨는 '우리 조상들은 그냥 알코올 기운의 술만 만든 게 아니라 최고의 약성을 우려내 술로 섭취하게끔 하는 등 '사람을 살리는 술'을 빚는 데 온갖 정성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술은 우리 전통 음식입니다. 사람에게 해로운 음식을 만들 수 없듯이 우리도 이제는 '사람을 죽이는 술'은 만들지도 권하지도 말아야 하지요."

◆오정주가 가야 할 길

"한잔 더 하시죠." 이 씨에게 오정주를 권하던 박 씨는 갑자기 '지금 너무나 저급한 음주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며 한탄한다. '아니 소주를 권하면서 약주 한잔 하라니. 말이 되는 소리냐'는 것. 이어 일제 암흑기를 성토했다. 1927년 조선총독부가 주세공포령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찬란한 전통주 문화는 하루아침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통주 도가 주인의 한결같은 탄식은 왜일까. 이 씨도 무릎을 치며 맞장구친다. "하회탈춤도 바로 그때 맥이 끊어졌다가 1960년대 겨우 복원될 수 있었어요."

"모든 술 생산은 소주와 맥주, 탁주로 제한했습니다. 우리 전통주 문화를 말살시키고 일본 정종문화를 주입시키기 위한 일본인들의 교활한 주세정책이었어요. 허가도 친일파에게만 내줬지요." 그의 이야기는 곧 분노로 바뀐다. "해방 이후에도 친일파 득세로 그 못된 법은 악법 그대로 골격이 유지돼 지금에 이르고 있지요." 그는 또 '최근 우리술진흥법으로 좀 완화된 것도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풀어 준다는 게 도리어 개악입니다. 인터넷 판매도 하루 50병만 팔도록 제한해 놓고, 술 사는 사람 주소 성명 주민등록번호 다 적도록 합니다. 꽁꽁 묶어놔 놓고선 어떻게 시장 개척하라 합니까?"라며 반문했다.

"내 말 좀 들어보세요. 영국 위스키, 프랑스 코냑, 러시아 보드카, 중국 바오주, 멕시코 데킬라 등은 전부 그 나라 역사와 문화가 담긴 전통주 아닙니까. 그래서 세계화가 가능했지요." 박 씨는 최근 막걸리로 세계화한다는 이야기에는 그저 기가 막힐 뿐이라고 한숨이다. "세계화된 각 국가의 술도 모두 독주이기 때문에 가능했지요. 알코올 도수 20도 미만인 술은 자체 살균력이 없어 한계가 있습니다. 이것도 우리 전통주의 길을 막걸리로 막아보자는 기득권들의 속셈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격한 이야기 속에 잠시 웃음을 잃어버린 박 씨. 눈가에 맺힌 이슬은 눈물인가 땀인가. 우리 조상들의 슬기와 풍류가 넘쳐나는 오정주는 30, 40대를 고스란히 쏟아넣은 박 씨에게는 눈물 맺힌 술이다.

"우리처럼 막소주가 나라 술을 대표하는 국가가 세계 어디 있습니까". 박 씨의 질문 세례에 이 씨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지른 듯 유구무언이다. "누가 오정주를 하겠다면 그냥 내주겠어요. 나는 이제 글렀고." 박 씨는 일행들에게 우리술을 연구하며 깨알같이 적어 놓은 공책을 펴 보였다. 이 씨가 '다시 한 번 노력해 보자'고 달래지만 조용히 손사래를 친 박 씨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모은 우리술 비법을 '선농활인방'이라는 책으로 엮어내겠다고 말했다.

매일신문 권동순기자 pinoky@msnet.co.kr
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사진 프리랜서 강병두 pimnb12@hanmail.net
2010/07/2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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