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10·끝>전주 이강주 조정형 씨

조회 수 1459 추천 수 10 2010.02.11 15:09:57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70000000884/3/70070000000884/20100121/25558748/2멥쌀 소주에 배-생강 넣고 침출… 은단 씹은 느낌

전통주 명인 고천 조정형 선생이 배, 생강, 울금, 계피를 넣어 빚은 이강주를 만들기 위해 소줏고리에서 술을 내리고 있다. 전주=박영철 기자
《전주 이강주 명인 조정형 씨(69)는 술과 뗄 수 없는 팔자를 타고 난 사람이다.
향토사학자이자 시조시인이었던 그의 선친 작촌 조병희 선생(1910∼1996)은 그가 태어나던 날 일기에 “산모가 태몽에 땅속에서 술 빚는 솥이 솟아오르는 꿈을 꾸어 솥 정(鼎) 자를 넣어 이름을 정형이라고 지었다”고 적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술에 관한 한 누구보다 이론과 실재를겸비한 사람이다.》

1964년 전북대 농화학과에서 발효학을 공부한 뒤 목포 삼학소주와 전주 오성주정, 익산 보배소주, 제주 한일소주 등에서 25년 동안 실험실장과 공장장, 기술고문 등을 지냈다. 주조사 1급 자격증에 수질환경관리 1급, 전북 무형문화재, 명인 칭호에 ‘다시 찾아야 할 우리 술’, ‘우리 땅에서 익은 우리 술’ 등 2권도 책도 냈다.

소주회사 공장장을 지내던 1980년대 초, ‘애주가들의 기호에만 맞추는 술이 과연 좋은 술인가’ 하는 회의에 빠졌다. 당시 ‘밀주’라고 천대 받으며 사라져 가던 가양주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회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국 도서관을 돌며 민속주에 관한 문헌자료를 수집하고 특이한 술이 있다면 산골 오지나 조그마한 섬까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이라며 가르쳐 주지 않는 할머니들을 설득해 담그는 법을 알아내곤 했다. 밀주 단속이 워낙 심했던 때라 술 만드는 법을 물으면 세무서 공무원이나 경찰로 의심받기 일쑤였다. 1984년에는 소주공장에 아예 사표를 내고 본격적으로 민속주 만들기에 나섰다. 집까지 팔아 치우면서 그가 만들어 본 민속주는 200여 가지.

전주지역에서 벼슬을 했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술인 이강주를 본격적으로 만들기로 하고 무형문화재 등록을 신청했지만 당시 전북도 문화재 심사위원이던 아버지가 번번이 퇴짜를 놓았다. 민속주에 미쳐 멀쩡한 직장 때려치우고 살림까지 말아 먹은 아들에게 문화재 등록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술 익는 항아리에서 나는 ‘뽀글뽀글’ 하는 소리가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음악보다 좋았어요. 술 익는 방에서 혼자 자면서 항아리를 부여안고 울기도 많이 했죠.” 그는 숙성되는 술에 손가락만 넣어 보고도 술 익는 온도를 알아내며 코로 술내음만 맡아도 정확하게 알코올 농도를 집어내는 사람이다. 요즘도 사무실 한쪽에서 술이 발효되면서 날아가는 탄산가스로 인해 줄어든 무게를 역산해 주정 도수를 산출해 내는 방법을 실험하는 등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이강주는 배(梨)와 생강(薑)이 들어가서 이강주다. 예전에는 약의 의미인 이강고(梨薑膏)로도 불렸다. 누룩과 멥쌀로 약주를 빚어 증류를 거쳐 소주를 만들고 여기에 전주 배와 완주 봉동의 생강, 울금, 계피를 넣어 침출시킨다. 배는 청량감이 뛰어나 소화제 역할을 하고 생강과 계피향은 조화를 이뤄 감칠맛을 낸다. 울금은 습관성이 없는 신경안정제다. 여기에 꿀을 넣어 숙성시켜 알코올 도수 35도의 이강주가 완성된다. 최근에는 도수를 낮춰 25도와 19도 술을 만든다.

아주 옅은 노란색을 띤다. 흰 창호지가 빛바랜 것처럼 고풍스러운 색깔이다. 향은 짙다. 입에 한 잔 머금으면 은단이라도 씹은 것처럼 화한 기운이 가득 퍼진다. 술꾼들 사이에서는 ‘여름밤 초승달 같은 술’로 불린다. 이강주는 조선 중기 이후 국내 3대 명주로 꼽히던 술이다. 음식에 들이는 깊은 정성과 여성들의 빼어난 손맛으로 ‘맛의 본향’으로 불리는 전주의 명주다. 유학자 유득공의 ‘경도잡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등에 이강주는 평양 감홍로, 호남 죽력고(정읍) 등과 함께 최고의 술로 꼽혔다. 고종 때 한미통상조약 체결 당시 건배주로 쓰일 만큼 국가대표 술이었다.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중국, 호주에도 수출한다.

“술은 제게 신앙입니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이어서 진실해야 합니다. 정성을 들인 만큼 잘 익고 맛이 좋아집니다.”

문제는 숙성 시간이다. 이강주는 오래 묵히면 묵힐수록 맛이 깊어지는데 여러 여건 탓에 6개월 숙성이 전부다. 그는 제대로 된 술 저장 공간을 마련해 오랜 숙성을 거친 이강주를 만들어 세계 명주들과 한판 붙어보는 꿈을 꾼다. 그동안 모은 1200여 점의 술 관련 자료로 술박물관을 열고 전통주 기법을 총정리한 책도 펴낼 계획이다.

“이루어질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죽기 전에 전국 명주의 장점을 딴 최고의 술 ‘신선주’를 한 잔이라도 만들어 보고 싶소.”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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