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 양조장 돌며 술 여행…막걸리는 가장 착한 술"

조회 수 1491 추천 수 1 2010.08.21 11:02:26


"300여 양조장 돌며 술 여행…막걸리는 가장 착한 술"

허시명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겸 막걸리학교 교장

“2008년 늦가을 무렵 갑작스레 막걸리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 시작이 일본에서부터라는 게 아쉽다. 이젠 우리들 스스로 우리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막걸리를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듯하게 서민을 품어 줄뿐더러, 건강까지 챙겨 주는 막걸리는 앞으로 제3의 전성기를 맞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오랜 기간 전업 여행작가로 활동하던 그였다. 우연인 듯 양조장 취재를 진행했고, ‘이거다’ 싶었다. 막걸리를 제대로 아는 것, 널리 알리는 게 해볼 만한 일이라고 믿었다.

허시명 한국여행작가협회장이자 막걸리학교 교장은 그야말로 전통주 분야의 전문가로 우뚝 섰다. 막걸리의 역사ㆍ문화는 물론 그 숨겨진 제조방법과 기술 및 맛의 차이를 분석하는 실용적 전문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막걸리에 담긴 장인정신, 건강에 유익한 점까지 발견할 땐 감동이 북받칠 정도였다. 이젠 10여 년간 파악한 막걸리의 진면목을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리겠다는 신념 뿐이다.”

막걸리 취재에 빠지면서 전통주 전문가로

그의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기껏해야 30대 중후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우리 나이 쉰이라고 한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에둘러 물었다. “굉장히 젊어 보인다.” 우문에 현답이 뒤따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인지 나이도 비껴가는 듯하다”며 미소 짓는다.

그는 문화교양지 <샘이 깊은 물>에서 5년간 기자생활을 하다가 여행작가 프리랜서로 전업했다. 이후 음식ㆍ펜션 등 여러 가지 테마로 취재를 하다 술과 만나게 됐다.

“1990년대 말 누구도 술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술 만드는 사람은 제조비법이 누설될까 봐 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마시는 사람들도 어느 회사의 소주나 맥주만 찾으며 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 같은 모습이 내게 일종의 틈새 아이템으로 다가왔다.”

이즈음부터 그는 전국의 술 양조장을 찾아 다녔다. 300곳이 넘는다. 술 공부를 위해 일본도 가고, 국내 모 대학의 민속대학원도 다녔다. 돌아보면 아찔한 낭떠러지를 곳곳에서 만났지만, 지날 때는 몰랐다고 한다.

“고장마다 다른 자연환경, 다른 식재료, 그렇게 만들어진 다른 맛은 오롯이 공간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되곤 했다. 고을마다, 마을마다 각기 다른 술을 체험하고 그 술을 오래도록 만들어 온 장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물과 지역의 재료에 따라 술맛이 다르다는 것도 깨달았다.”

밀양 박문주, 경주 교동법주, 함양 솔송주, 해남 진양주…. 그가 보는 한국지도는 그야말로 술지도나 다름없다. “우리 술은 유독 ‘약술’이 많은 편이며, 그중 막걸리는 동아시아 삼국 중 가장 순한 전통술에 속한다”고 말하는 그는 막걸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막걸리는 농기구와 같다. 순한 맛으로 일상의 곁에서 함께하는 벗과 같다. 건설현장에서 오랜 기간 사랑받았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술은 군수품의 성격을 갖지만 주도가 낮고 유통기한이 비교적 짧은 막걸리는 몸에 이롭고 생활의 여유를 만드는 착한 술이라고 강조했다.

막걸리 세계적 명주로 거듭날 것

막걸리가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노동자들로부터 꾸준히 사랑받던 막걸리의 재조명은 사실 일본에서부터가 아닌가 싶다. 한류와 엔고 분위기가 일본인의 막걸리 사랑을 부추겼고, 이 분위기가 한국으로 이어졌다. 기본적으로는 막걸리의 품질이 향상된 데다 사회적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효모가 살아 있는 저도주인 막걸리에 자연스레 관심이 쏠리게 된 측면이 있다.”

그는 “술은 2년 단위로 유행을 타는 만큼, 지금의 현상이 일시적 바람에 그치지 않으려면 확실한 음식문화로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의 초밥ㆍ어묵에 으레 정종이 따라붙는 것처럼 우리도 막걸리와 짝을 이루는 음식들을 정형화하고, 그것을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 나가야 한다는 거다. 그가 막걸리학교 시음회 때마다 안주에 유독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기호품이기에 앞서 술도 음식이기에 전통주의 미래는 한식의 세계화와도 맞물려 있다고 본다. 와인이나 코냑처럼 생산이력이 잘 나타나게 상표제를 도입하고, 그 상표를 규격화해 나가야 한다. 이젠 양적 팽창을 어떻게 질적으로 잘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때다.”

-전통주가 지역별로 매우 다양하다고 들었다. 맛의 차이가 느껴질 만큼 종류가 다르다고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고 본다. 지금 우리가 마시는 막걸리ㆍ소주가 대부분 비슷하다고 알고 있지만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와 주조법에 따라 술의 종류는 천차만별이다. 예부터 조상들이 제사와 집안 경조사에 쓸 술을 직접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가양주 문화는 수많은 명주와 비주를 탄생시키지 않았는가?

다만 일제 강점기 밀주 단속법, 1965년 양곡 관리법에 의해 우리 전통주는 한순간에 명맥이 끊기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쌀술 제조가 가능해져 지금은 허가를 받은 전통주 면허업체가 264개이며, 고문헌을 통해 복원된 술 종류만도 수백 가지에 이른다.”

-전국 300여 곳의 양조장을 돌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술이 있을 듯하다.

“한산 소곡주와 진도 홍주를 꼽는다. 소곡주는 누룩을 적게 써서 빚은 술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다. 누룩을 적게 써서 술맛을 내려면 진짜 술을 담글 줄 아는 사람 아니고는 담그기 어렵다. 감칠맛 나는 독특한 술맛 때문에 앉아서 먹기 시작하면 일어날 줄 모른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란 애칭도 있다. 홍주는 눈이 먼저 취하는 술로 색과 향이 경이로운 술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술은 재료 본연의 맛이 잘 살아나는 술이다. 막걸리가 세계에서도 통하는 명주로 거듭나기 위해선 우선 재료를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쌀을 썼고, 막걸리 칵테일을 만들었다면 어떤 과일을 첨가했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는 거다. 세계화를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가 있다면 감미료를 넣지 않은 막걸리를 생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술을 자신에 맞게 행복하게 즐기길 바란다. 3잔은 적고, 5잔이 적당하되, 7잔은 과하다. 마시는 술의 배경도 제대로 이해하면 지금까지의 ‘의미 없는 취기’보다는 훨씬 행복한 자리를 만들어 줄 거라고 자신한다.”

건설경제신문 글=박우병기자 mjver@ 사진=안윤수기자 ays77@
2010/08/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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