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빚으며 (등단 추천글)

조회 수 2292 추천 수 155 2006.05.16 09:47:14
상현달이 키워져 사나흘이면 보름 입니다.
축시가 가까워 오는 시각,사위는 조요하고 대기는 가라앉아 있습니다.
정갈히 개어둔 새입성 챙겨들고 뒷뜰 우물가로 갑니다.
파리한 달빛담아 찬물 한 바가지 끼얹고 차분히 기를 다스립니다.

소쩍새 울음 따라 물동이 챙겨들고 뒷산 샘터에 이릅니다.
만월에 이르기 직전의 충만한 음기를 머금은 샘물위엔 나즈막히
서기가 깔려있고 인시의 시작에 맞춰 영계와 육계의 나눔의시간,
물의 정기는 가장 순하게 정화되어 있을 때 입니다.
윗물을 조심스레 걸러,시계반대 방향으로 조심스레 퍼 담습니다.
되돌아 오는 길엔 여명이 스며들고 길을 재촉해야 합니다.
일출의 가득한 양기를 받아 밑술을 앉혀야 할 때가 이른 까닭 입니다.

어제 아침 일출에 맞춰 미리 참나무 숯으로 쪄 논 고슬한 밑밥을 깔고
볕좋을때 잘 말렸다 빻아둔 누룩가루를 조심스레 켜켜이 올린뒤,
사이사이 길어온 정화수로 정갈히 독을 채워 갑니다.
거친 숨,탁한기 배일세라 한지 한장 입에 물고 기도 섞어 술을 앉힙니다.
헛간동녘으로 단모은 독속에 가득히 밑술이 채워질 즈음,붉게 일출 입니다.

밑술을 채운지 일주일여,매일 새벽녘 자시께에 일어나 독을 만져봅니다.
술을 익히는 누룩의 성정이 마치 젖먹이 하룻거리와 같은지라,
낮동안은 칭얼대며 서너번은 뒤척이고,새벽녘엔 깨어나 부산히 노는것이라,
냉하다 싶으면 이불두루마리에,혹은 멍석을 감아주고
독위에 덮은 한지에 수분이 마르거나 독이 더워졌다 싶으면 물수건으로훔쳐
아이 젖물릴때의 어미젖무덤의 온도와 가깝게 숧독을 보살핍니다.

간간이 물푸레 나무로 만든 동댕이로 한두번 휘휘 저어주고는
이내 한지를 덮어서 바깥공기 들어감을 최소화 해야 합니다.

술을 앉히기전엔 헛간은 정갈히 청소해두고,
독을 얹은뒤에는 미동도 없도록
일체의 드나듦을 통제하고 차분히 가라앉은 대기의 상태를 지켜 줍니다.

술이 익는 기간내내 매일새벽에 독을 만지기전 목욕재계를 하며,
헛간은 물론이며 집안내에서는 장독대나 김치독 따위도 열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생물이라,유사한 숙성음식으로 일체의 영향주지 않음 입니다.

열흘 가까운 새벽정성이 다 해가면 독에선 달디단 향이 흘러 나옵니다.
맘속 깊이 정성을 드리며 한지뚜껑을 열어 봅니다.
초유먹은 젖먹이의 대변처럼 황금빛 보풀이 엉겨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 하며 밑술 걸러낼 채비를 갖춥니다.

정성껏 마련해둔 삼베를 깔고 함지박에 조심조심 독을 기울여 냅니다.
천천히 보의 윗단을 비틀어 맑은술 초벌로 걸러 냅니다.
굵은체,중간체,가는체,고운체로 네번을 다시 걸러 냅니다.
이제는 어느정도 노르스름 한빛으로 술이 제법 맑아 있습니다

.

참나무 숯으로 선불을 거른뒤 적당히 중불이 오르는 아궁이에 고리를 겁니다
아랫단 소주고리에 맑은 밑술을 붓고 나서 밀가루로 윗단고리사이 틈을 막고
역시,맨 윗단의 증류고리에도 사이에 밀막음을 해 둡니다.

얹어둔 고리를 정갈히 닦아낸 다음,백자 항아리를 받쳐 둡니다.
증류된 소주는 옹기나 철화등의 이물이 섞인 항아리에서는 맛이 변하기때문에
받아두고 최소한 석달은 숙성할 동안에는 반드시 백자항아리로 받아둡니다.
이제는 불조절만 남았습니다.

땀이 비오듯 하고 눈은 벌겋게 충혈 되어 가지만
아궁이의 샛노랗고 붉은 화기에 몸이 익어 가는 동안 기분이 더 맑습니다.
정신은 오직 술고리를 따라서 흘러 나올 맑은술과 함께 증류되어 갑니다.

톡~...첫방울이 흘러서 백자 항아리에 떨어 집니다.
첫울림 소리는 마치 산사의 풍경소리처럼 전신을 흔드는 전율로 타고 옵니다.
두식경 남짓의 방우방울이 모여서 항아리 그득히 맑은술이 고였습니다.
백자바닥은 하늘이 되고 흘러든 술은 감로수가 되어
그름도 흘러가고 새소리도 담겨 있고,달의 맑음과 해의 열기도 담깁니다.

조심스레 세겹으로 한지뚜껑을 동이고 천천히 들어 자리를 잡아 둡니다.
이제 술한독 걸러서 맑은 술 항 항아리 빋었습니다.
피로가 엄습하면서,뭉클한 서러움도 밀려 옵니다.
참 모를 일 입니다. 매번 술을 받을때마다 딸아이 시집보내듯 애잔해집니다.
이제는 들어가 죽은듯 밀린잠을 청할 것입니다

먼 산의 산새 울음이 아이웃음처럼 맑아 있습니다.

<아빠~나 딸이야..언제 와? 너무 늦게 오지마.....>
꿈결인듯 아닌듯 아이의 목소리....눈시울이 붉어 집니다.
한잠들어 깨고 나면 남은 막지술이나 한 잔 해야겠습니다.....


   -2002년 10월 어느날에-        정훈

酒人

2006.05.16 11:18:12
124.61.

정성스럽게 술 빚는 모습이 옛 흑백 영화처럼 스쳐지나가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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