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명인의 술 이야기]<6>지리산 솔송주 박흥선 씨

조회 수 1828 추천 수 10 2010.02.11 15:06:29
http://news.donga.com/Series/List_70070000000884/3/70070000000884/20091210/24697552/2《조선시대 영남 유림의 맥을 논할 때 ‘좌안동 우함양(左安東 右咸陽)’이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경남 함양은 일찌감치 묵향의 꽃을 피운 선비 고을이다. 그 중에서도 지리산을 병풍 삼아 볕 좋은 곳에 자리 잡은 함양군 지곡면 개평마을이 대표적이다. ‘조선5현(朝鮮五賢’) 가운데 한 사람인 일두 정여창 선생(1450∼1504)의 500년 된 고택(국가지정 중요민속자료 제186호)이 이곳에 있다. 하동 정 씨의 집성촌인 이 마을에는 200년 이상 된 기와집 수십 채와 아담한 돌담길이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남아 있다.》

청정 암반수… 깊은 솔향… ‘지리산의 술’


또 하나. 늘 푸르고 꼿꼿한 소나무와 선비의 절개를 닮은 명주가 500년 세월을 이어오고 있다. 정 선생 가문에서 500년째 내려오는 가양주(家釀酒)인 ‘지리산 솔송주’다.

“물 좋은 곳에서 좋은 술이 나기 마련이죠. 술의 절대량이 물로 채워지니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명주가 결정됩니다. 솔송주는 지리산 지하 암반수에 지리산 골짜기에서 나는 찹쌀, 솔잎, 송순, 누룩을 버무린 지리산의 술입니다.”

솔송주의 맥을 유일하게 지켜오고 있는 박흥선 씨(57·전통식품명인 27호)는 정 선생의 16대손 며느리이다. 33년 전 개평마을에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에게 술 빚는 법을 배웠다. 100세인 시어머니의 건강이 좋지 않아 요즘엔 박 명인 혼자 맡고 있다.

“처음 시집왔을 땐 누룩 냄새를 맡지도 못했어요. 30년 넘게 술을 빚어왔지만 술은 한잔도 못 비워요. ‘이런 내가 가문의 술을 빚을 수 있을까’ 하고 고민했지만 가양주의 맥을 이어가야겠다는 생각에 제조법을 배웠습니다.”

술은 못하지만 혀끝으로 술이 잘 빚어졌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남편 정천상 씨(63)의 도움도 컸다. 정 씨는 20대 초반 총각 시절부터 맛본 솔송주에 대한 절대미각이 있다. 그의 기억으로는 솔송주 한잔을 맛보기 위해 전국에서 개평마을을 찾은 주당 나그네가 엄청났다고 한다.

지금 솔송주가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당시엔 술 이름이 ‘송순주(松荀酒)’였다는 점. 박 명인이 1996년 주조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타 지역에서 먼저 등록한 송순주와의 중복을 막기 위해 한글로 풀어 솔송주라고 이름 붙였다.

함양 선비들의 주안상에 오르던 솔송주의 제조과정은 이렇다. 찹쌀 죽에 누룩을 잘 섞어 독에 보관하고 사흘가량 발효해 밑술을 만든다. 식힌 고두밥과 살짝 찐 솔잎과 송순을 밑술과 섞어 보름가량 숙성한다. 송순을 찌는 건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서다. 숙성된 술을 채와 창호지에 걸러내 서늘한 곳에서 20일가량 보관한 뒤 맑은 윗술을 떠내면 비로소 솔송주가 완성된다.

발효과정에서 남은 당분(잔당)을 조절하는 건 박 명인만의 비법이다. 당분이 없으면 독한 술이 되고 너무 많으면 고유의 술맛이 사라진다. 솔향 가득한 술은 이렇게 후손의 손끝에서 가문의 명예를 지켜왔다.

여느 술 빚는 사람처럼 박 명인도 발효와 숙성을 중요시 한다. 날씨와 온도에 따라 숙성기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신경을 곤두세운다. “발효는 하늘만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술을 빚는 과정에서 기도를 많이 드립니다.” 가톨릭 신자인 박 명인은 술 빚는 과정이 기도의 과정이라고 표현했다.

솔송주는 이름을 닮은 맛을 낸다. 진한 솔향이 먼저 코끝을 파고든다. 도수가 높지만 달짝지근한 맛에 목 넘김이 부드럽다. 뒤끝이 깨끗한 게 특징이다.




1996년부터 솔송주는 대변신을 꾀했다. 가양주 특성상 공급이 달리던 솔송주 명성을 전국과 해외로 확대하기 위해 대량 생산의 길로 접어들었다. 박 명인 부부가 개평마을 인근에 대형 술도가인 ‘명가원’을 차렸다. 현대식 술도가에서 만든 솔송주는 13%짜리 약주와 40%짜리 증류주로 나뉜다.

솔송주와 명가원에서 만드는 과실주는 해외에서도 인기다. 홍콩 중국 미국 일본 등 6개 나라에 수출하고 있다. 그동안 정천상 씨가 매년 서너 차례씩 국내외 주류 박람회에서 솔송주의 우수성을 알리고 다녔다. 박 명인도 직감과 손맛으로 전수된 제조법을 대중화로 이끌어내기 위해 술도가에서 몇 년을 연구했다.

전통을 간직한 노력 덕분에 솔송주는 지난해 경남 창원시에서 열린 환경 올림픽인 ‘2008 람사르 총회’에서 공식 건배주로 채택됐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방문 때 남측이 내놓은 공식 만찬주 가운데 하나였다.

함양=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List of Articles
제목 조회 수 날짜sort
2018 대한민국 우리술 주안상 대회 Real영상 3335 2018-12-17

지역특산물로 만든 막걸리 쏟아진다

지역특산물로 만든 막걸리 쏟아진다 복분자ㆍ사과ㆍ우뭇가사리ㆍ메밀ㆍ인삼ㆍ대추… 고창 복분자, 예산 황토 사과, 포항 우뭇가사리 막걸리…. 최근 지역쌀과 특산물을 주요 재료로 사용한 토속 막걸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막걸리 원산지표시제와 막걸리 품...

  • 조회 수 1516
  • 2010-08-12

해남 대표쌀로 만든 '한눈에 반한 막걸리' 출시

해남 대표쌀로 만든 '한눈에 반한 막걸리' 출시 전남 해남지역 대표 브랜드쌀로 만든 '한눈에 반한 막걸리'가 출시된다. 10일 해남군에 따르면 옥천농협과 옥천주조장이 최근 협약식을 갖고 '한눈에 반한 쌀'을 100% 사용한 막걸리를 생산판매하기로 했다. 이...

  • 조회 수 1604
  • 2010-08-12

해외에서도 막걸리 ‘열풍’

해외에서도 막걸리 ‘열풍’ 中수출액 22배·美 8배 ↑ 막걸리 열풍이 해외에서도 거세게 불고 있다. 올해 상반기(1∼6월) 막걸리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기간에 비해 4배 가까이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중국 수출액은 22배로, 미국은 8배로 상승했다. 10일 ...

  • 조회 수 1095
  • 2010-08-12

막걸리 열풍… 특허출원 급증

막걸리 열풍… 특허출원 급증 인삼등 재료다양화 가장많아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다양한 지역특산물을 첨가한 막걸리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관련 특허출원도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허청에 따르면 막걸리 특허출원은 2005년 12건으로 전체 주류 출...

  • 조회 수 1293
  • 2010-08-12

[영상]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주, 서민의 술로 복원 성공

[영상]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주, 서민의 술로 복원 성공 7~10일 만에 만들어 먹는 전통주 '녹파주', '아황주' 실용화 1000년전 고려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왔지만,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치며 옛 문헌속으로 사라졌던 전통주들에 대한 복원이 성공했다. 농...

  • 조회 수 1297
  • 2010-08-14

부산국제주류박람회..명품 전통주 한자리에

부산국제주류박람회..명품 전통주 한자리에 10월14~17일 벡스코서 개최..판로개척 등 지원 막걸리와 명품 전통주를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주류박람회가 10월 부산에서 개최된다. 부산국제주류박람회 주최사인 드림코리아는 10월14일부터 17일까지 부산 해운...

  • 조회 수 1764
  • 2010-08-15

[전통주, 세계화의 길을 묻다] ⑥봉화 선주

-> 사각도자기병과 호리병에 담긴 봉화 선주. 취하면 신선의 경지에 이르는 시구가 떠올라 감동적인 시를 지을 수 있다고 해서 선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 향토 한국화가 이청초 씨가 '비오고 무척 술 고픈날입니다'라며 봉화선주를 그림으로 그렸다. [전통...

  • 조회 수 2234
  • 2010-08-17

"300여 양조장 돌며 술 여행…막걸리는 가장 착한 술"

"300여 양조장 돌며 술 여행…막걸리는 가장 착한 술" 허시명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 겸 막걸리학교 교장 “2008년 늦가을 무렵 갑작스레 막걸리의 전성기가 찾아왔다. 그러나 이 시작이 일본에서부터라는 게 아쉽다. 이젠 우리들 스스로 우리 역사가 살아 숨 ...

  • 조회 수 1499
  • 2010-08-21

산.관.학 '경기 막걸리 세계화 사업단' 출범

산.관.학 '경기 막걸리 세계화 사업단' 출범 경기도 내 지자체와 생산업체, 대학이 참여하는 '경기 막걸리 세계화 사업단'이 19일 오전 경기도청에서 김문수(왼쪽에서 9번째) 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출범식을 가졌다.2010.08.19.<<지방기사 참고.경기도 제...

  • 조회 수 1673
  • 2010-08-21

농진청 전통주 복원 움직임 활발

농진청 전통주 복원 움직임 활발 고려시대 ‘녹파주’ ‘아황주’ 실용화 성공 … 2012년까지 총 15개 전통주 복원 목표 전통주를 복원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농촌진흥청은 2008년 ‘삼일주(三日酒)’와 ‘황금주(黃酒)’에 이어 고려시대부터 전해 오던 ‘녹파주(波酒...

  • 조회 수 1097
  • 2010-08-21

"'신의 물방울' 따로 없네" 전통주 품평회

"'신의 물방울' 따로 없네" 전통주 품평회 강원도는 18일 춘천시 우두동 농업인 단체회관에서 도내 제조 전통주에 대한 '우리 술 품평회'가 개최됐다고 19일 밝혔다. 이번 품평회는 전국 단위로 열리는 '2010 우리 술 품평회'에 참가할 도내 제조주를 가리고 ...

  • 조회 수 1445
  • 2010-08-21

[전통주, 세계화의 길을 묻다] ⑦ 경주 황금주와 신라주 [1]

-> 다양한 호리병과 '신라 천년의 미소' 도자기병에 담긴 경주 황금주와 신라주는 그 자체가 인기있는 관광상품. 주도가 14도인 황금주를 소줏고리로 고아서 30도의 맑은 신라주를 빚어낸다. -> 우리 전통주의 천년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경주 '포석정...

  • 조회 수 2416
  • 2010-08-21

이천시, '무감미료 이천쌀막걸리' 시음회 개최 file

-> 31일 이천시청 직원식당에서 열린 '이천쌀막걸리 시음회'에 조병돈 이천시장 등 100여명이 참석해 막걸리를 마셔보고 있다. 이천시, '무감미료 이천쌀막걸리' 시음회 개최 임금님표 이천쌀로 만들어 쌀 소비 증가 기대 이천시는 31일 시청 직원식당에서 조...

  • 조회 수 1703
  • 2010-09-03

청원군 ‘민들레 막걸리’ 개발 착수 [1]

청원군 ‘민들레 막걸리’ 개발 착수 충북 청원군이 간·위염 개선에 효과가 있어 건강식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민들레'를 이용한 막걸리를 개발한다. 민들레로 빚은 동동주가 맛이 탁월하다는 시골 한 농가의 제안으로 개발에 들어간 '청원 민들레 막걸리(가...

  • 조회 수 1359
  • 2010-09-03

식음료, 산소 사냥 나섰다 file [88]

-> 밀폐캡으로 산소를 차단한다=밀러브루잉코리아의 ‘그롤쉬’는 맥주병 입구에 산소를 차단하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스윙탑’ 병마개를 장착했다. 스윙탑은 오프너로 병 뚜껑을 따거나 손으로 돌려 따는 트위스트 오픈캡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새로운 타입...

  • 조회 수 3605
  • 2010-09-03

마산대학, '한국 전통주 유럽에 선보인다!' file

마산대학, '한국 전통주 유럽에 선보인다!' 경남 마산대학(총장 이학진) 국제소믈리에과 2학년 학생 27명은 2010년 9월 8일부터 10월 2일까지 이탈리아 북부와 프랑스의 보르도, 부르고뉴, 파리를 방문하여 와인연수를 실시한다. 학생들은 커피 메이커로는 세...

  • 조회 수 1870
  • 2010-09-03

충남도 '지역대표 전통주' 12개 선정 file

-> 한자리에 모인 충남대표 전통주 (대전=연합뉴스) 충남도는 최근 대전시농업기술센터에서 열린 '2010 충남 우리술 품평회'에서 '지역대표 전통주' 12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전통주는 농림수산식품부 주최로 오는 30일부터 3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열...

  • 조회 수 1853
  • 2010-09-03

[주세법 개정안]전통주 원료 '과채류' 사용 허용

[주세법 개정안]전통주 원료 '과채류' 사용 허용 [2010년 세제개편안 입법예고] 내년부터는 탁·약주 등의 원료로 과실 및 과채류를 사용할 수 있으며, 약주에 주정 및 증류식소주를 첨가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기획재정부는 27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

  • 조회 수 1464
  • 2010-09-03

[전통주, 세계화의 길을 묻다] ⑧ 달성 하향주 file

-> 비슬산 맑은 물로 빚어 낸 달성 하향주는 비슬산 계곡수로 지은 유가찹쌀을 100일 동안 발효시켜 만든 주도 17도의 우리 전통 약주다. [전통주, 세계화의 길을 묻다] ⑧ 달성 하향주 비슬산 맑은 물에 100일 발효 유가찹쌀로 빚어…숙취 아예 없어 비슬산을 ...

  • 조회 수 2966
  • 2010-09-03

감미료 무첨가 이천쌀 막걸리 생산 file

-> 이천시가 합성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은 이천쌀 막걸리 제조 표준화를 완성하고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1일 이천시청 구내식당에서 열린 이천쌀 막걸리 시제품 시음 모습. 감미료 무첨가 이천쌀 막걸리 생산 市, 발효과정서 단맛내는 공정 표...

  • 조회 수 2694
  • 2010-09-10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