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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박순욱의 술기행](73) “좋은 누룩이 좋은 술 만든다.” 입증한 한영석 청명주

조회 수 4087 추천 수 0 2022.04.29 20:50:33
입력
 
 수정2022.04.27. 오후 12:47

 

전북 정읍,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 신제품 청명주 출시
60일 자연발효 누룩에 60일 저온발효, 30일 술 숙성한 덕분에 ‘맑은 산미’가 일품
가벼운 단맛, 푹 익은 사과즙 마시는 느낌…쌀 침지법 덕분에 풍부한 향
“전통누룩으로 얼마든지 좋은 술 대량생산 가능성 입증해 뿌듯”
2020년 국내 1호 누룩 명인 지정…누룩 들어간 발효조미료도 곧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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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가 발효조미료를 담을 장독대 앞에 서 있다. 누룩이 들어간 된장, 고추장, 소금 등을 기술이전을 통해 생산할 예정이다. /박순욱 기자
“한영석 청명주 한잔은 푹 익은 사과즙을 마시는 느낌이다. 가벼운 단맛과 풍만한 산미의 조화가 청명주의 이름에 걸맞는 맛과 향을 준다.”(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

“이전에 마셔봤던 청명주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맑고 가벼운 산미가 일품이다. 산미와 잘 어우러진 단맛이 전혀 묵직하지 않아 쌀 원료가 찹쌀이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다.”(더본코리아 백종원 대표)

2022년 봄에 출시한 한영석 청명주가 전통주 시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전통주 좋아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한영석 청명주 마셔봤니?”, “깜짝 놀랬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약주는 처음이야.”, “양이 적어서(375ml) 넘 불만이야” 이런 말들을 주고받기 바쁘다.

청명주는 원래 충주 중원당 청명주가 유명하다. 충북 무형문화재 제2호인 충주 청명주는 김영섭 명인이 만들어온 약주다. ‘약주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잘 만든 약주로, 문재인 대통령이 2021년 추석 청와대 선물로 선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신제품 청명주는 전북 정읍의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가 빚은 술이다. 그래서 기존 충주 청명주와 구분하기 쉽게 한영석 청명주로 불린다. 청명주는 특정인만 만들 수 있는 술은 아니며, 옛문헌에 주방문(제조법, 레시피)이 나와있는 전통술이다. 우리 조상들이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청명에 담가 먹었던 술인데, 찹쌀로 두번 빚는 이양주다. 조선후기 성리학자인 이익 선생이 저서 성호사설에서 “나는 청명주를 가장 좋아한다”며 주방문을 성호사설 만물문에 적어놓았을 정도로 즐겨 마셨던 술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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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가 직접 빚은 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청명주, 하향주, 동정춘. /박순욱 기자
충주 청명주, 한영석 청명주 모두 제조방법과 원료는 별 차이가 없다. 쌀은 100% 찹쌀만 쓴다. 다만, 충주 청명주는 개량 누룩을 사용하는 반면, 한영석 청명주는 직접 만든 전통누룩을 사용한다는 점이 다르다. 맛과 향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 전라북도 정읍, 한영석의 발효연구소를 찾았다. 내장산국립공원 안에 위치해, 주변 자연풍광이 예사롭지 않았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았다. 국립공원 안이라, 가축 키우는 축사가 전혀 없어 얼굴 찌푸리게 하는 냄새도 전혀 없어, 누룩과 전통술을 만드는데 ‘최적의 장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발효연구소는 2300평 넓은 부지에 누룩 발효공방, 양조장 등을 갖췄다. 키 큰 아름드리 나무 밑에는 된장, 고추장 같은 발효조미료를 담을 장독도 수십개 줄지어 있었다.

가벼운 산미가 일품인 한영석 청명주는 이런 환경에서 빚은 술이다. 60일간 직접 띄운 누룩을 사용하고, 술 빚는데 또다시 90일간 발효와 숙성을 거쳤다. 누룩 만들고 술 빚는데만 5개월이 넘게 걸린다. 대단한 ‘슬로푸드’가 아닐 수 없다.

한영석 대표가 빚은 청명주에는 왜 가벼운 산미가 날까? 신맛이 강한 술들은 술꾼들 말고는 대부분 싫어하는데, 한영석 청명주의 산미는 술 초보자 입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가 뭘까? 멥쌀이 아닌 찹쌀을 쓴 술인 점을 감안하면 단맛도 묵직한 게 정상인데, 왜 청명주는 찹쌀을 쓰고도 가벼운 단맛이 날까?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은 “청명주가 찹쌀로만 빚은 술임에도 가벼운 단맛을 내는 것은, 쌀의 침미(물에 담가두는) 시간과 발효, 숙성기간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더, 남들 쓰지 않는 ‘자가 누룩’을 쓴 덕분일 것이다. 이런 의문점들을 안고 한영석 대표를 만났다.

한영석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의 ‘누룩 명인’이다. 2020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인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는 전통 발효제인 누룩의 제조기법을 오랜 시간 연구개발하고, 계승발전시켜온 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를 전통발효 누룩 명인으로 지정했다. 누룩 명인 1호다. 한 대표는 척수염을 앓으면서 발효식품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0년 식초 만들기를 시작으로 2011년 술빚기, 누룩 만드는 방법 등을 익혔다. 누룩 만들어온지 10년만에 누룩 명인으로 지정됐으며 술 빚은지 12년만에 자신의 술 ‘한영석 청명주’를 2022년 봄에 내놓았다.

누룩명인 한 대표는 기자를 양조장에 앞서 누룩 발효실로 안내했다. 누룩이 만들어져야 그걸 갖고 술을 빚으니, 누룩실을 먼저 보는게 맞지 않겠는가? 누룩 발효실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대량생산하는 규모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공장형 누룩’을 만드는 곳이 아니었다. 번호가 붙여진 누룩실이 너덧개 있었고, 누룩실마다 누룩 40~50개가 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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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 대표가 누룩실에서 발효 중인 누룩을 들어보이고 있다. 한영석 대표가 운영하는 누룩실은 초복부터 초가을까지 90일간의 계절변화를 절반인 45일로 줄여 그대로 옮겨놓았다. /박순욱 기자
누룩은 하나하나씩 덤성덤성 사이를 주고 발효 중이었고, 누룩실은 온도, 습도는 물론 바람, 공기도 자연환경 그대로 맞춰져 있다고 했다. 한영석 누룩실이 공장형 누룩실과 다른 점 하나가 같은 크기의 공간에 누룩을 훨씬 적게 띄운다는 점이다. 공장형 누룩방에는 누룩을 거의 빈틈없이 빼곡하게 띄우지만, 한영석 누룩실은 누룩과 누룩 사이를 꽤 띄운다. 한영석 대표는 “공장형 누룩실에서 1톤을 만드는 누룩실에서 우리는 ‘5분의 1′인 200kg의 누룩만 띄운다”고 말했다.

누룩 생산량을 줄이는 이유는 누룩이 발효 중에 토해내는 높은 열 때문이라고 했다. 한영석 대표의 설명이다. “누룩실에서 곰팡이가 누룩에 달려들어 ‘품온’이라는 열을 낸다. 열을 많이 낼 때는, 실내 온도가 60도까지 올라간다. 그래서 누룩과 누룩 사이를 많이 띄워, 열을 식힐 수 있도록 한다. 빼곡하게 거의 누룩을 붙여 띄우면 양질의 누룩을 만들 수 없다.” 이러다 보니, 한영석 누룩은 생산성이 높을 수 없고, 상대적으로 가격도 비싸다. 문제는 일반 양조장에서 누룩을 선택하는 첫번째 조건이 ‘가격’이라는 현실이다.

안으로 들어가 본 누룩실 한 곳은 내부온도가 30도에 가까웠다. 누룩들이 한여름을 나는 중이었다. 습도 역시 90%가 넘어 잠깐이라도 버티기가 힘들 정도였다. 한영석 대표는 “누룩실은 장마가 끝나는 초복에서 초가을까지 계절의 변화를 고스란히 옮겨놓았다”고 말했다. 초복에서 초가을까지 90일간의 기온, 습도 변화를 절반의 기간인 45일로 압축해, 누룩실에 그대로 재현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누룩을 처음 띄울 때는 초복이고, 누룩 띄우기가 끝날 즈음이 초가을인데, 그동안의 계절변화를 누룩실에 옮겨놓은 것이다. 자동으로 온도, 습도, 바람, 공기까지 계절에 맞게끔 조정해두었기 때문에 일년 내내 누룩 띄우기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한영석 누룩은 ‘자연 발효 누룩’이다. 강제적으로 열을 가해 누룩의 습도를 빼는 것이 아니라, 자연 조건 그대로를 절반으로 축약해 누룩을 천천히 띄우는 형태다. 누룩 발효에 45일, 법제에 일주일 정도, 그래서 누룩 만들기는 약 60일이 소요된다.

처음 설명을 들은 한영석 누룩은 향온국이었다. 도정된 밀 80%, 보리 10%, 생녹두 10%를 섞어 띄우는 누룩이다. 발효실에서 본 향온국은 발효를 시작한지 26~27일 지났다고 한다. 발효(누룩 띄우기)를 45일간 하니 3분의 2 정도 지난 누룩인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누룩 겉면에 곰팡이꽃이 많이 피어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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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사진 오른쪽)가 신제품 '한영석 청명주' 시음회를 서울 전통주점 백곰막걸리에서 하고 있다. /백곰막걸리
발효 중인 누룩 겉면에 곰팡이가 많이 낀 누룩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습도 조절에 실패하면 곰팡이꽃이 많이 핀다는 것이다. 한영석 대표는 “누룩 겉표면에 곰팡이 포자가 많으면, 바깥면이 곰팡이로 코팅이 된다”며 “이럴 경우에는 누룩 안의 습도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또 안으로 곰팡이가 침투하지도 못해 품질 좋은 누룩이 만들어지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곳 한영석 발효연구소의 누룩실, 어디를 둘러봐도, 곰팡이꽃이 많이 피어있는 누룩은 보지 못했다.

두번째 발효실에서는 녹두국과 백수환동국이 발효 중이었다. 누룩 중 가장 만들기가 까다롭고, 또 비싼 백수환동국은 녹두와 찹쌀이 2대 1로 들어간다. 백수환동국은 1kg 가격이 30만원 가량일 정도로 비싼 누룩이다. 녹두가 10% 정도인 향온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녹두가 많이 들어간다. 녹두는 또 수분이 많아, 녹두가 대부분인 백수환동국은 띄우기도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 대표는 “백수환동국 누룩 만드는데 사용한 녹두 값만 70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그동안 워낙 많은 실패를 맛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백수환동국 누룩으로는 어떤 술을 만들까? 누룩 이름과 같은 술, 백수환동주에 쓰인다. ‘백수환동주’란 뜻은 ‘이 술을 마시면, 늙은이의 흰머리가 검어지고, 주름진 얼굴이 동안이 된다’는 뜻이다. 한영석 대표는 “내가 전통주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가 바로 백수환동주 맛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을 더 들어보자. “청명주 특징은 한마디로 ‘맑은 산미’라고 얘기할 수 있지만, 백수환동주는 한마디로 얘기하기 어렵다. 입안에 와닿는 바디감은 꽉 찬 느낌, 향은 잘 익은 과실향이 난다. 단맛은 중간 정도. 하지만 향을 똑 부러지게 표현할 재간이 없다. 나는 백수환동주를 ‘게딱지에 밥을 비벼 먹는 맛’이라고 말한다. 게딱지밥은 밥을 다 먹고 나도, 머리 속에 게딱지가 계속 생각이 나지 않는가? 백수환동주가 그렇다. 술을 마시고 나서도 그 술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18세기 서적 ‘중보산림경제’에는 백수환동주의 다른 이름이 상천삼원춘(하늘나라 3가지 주방문 중 으뜸)이라고 했다.”

한영석 대표가 입에 침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자랑한 백수환동주는 언제 세상에 나올까? 현재 숙성 중인 백수환동주가 있어, 빠르면 올 가을쯤 출시된다고 한다. 술 발효에만 90일, 또 숙성에 6~10개월 걸려 꼬박 일년을 투자해야 만들 수 있는 술이다. 그런데 가격이 기가 막히다. 375ml 한병에 30만원이라니. 약주는 물론 증류주를 포함해도 국내에서 가장 비싼 술이 백수환동주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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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 대표가 무게가 6 kg 되는 대형 누룩을 선보이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추진 중인 한국형 고량주를 만드는데 쓰이는 누룩이다. /박순욱 기자
한영석 발효연구소에서는 이밖에 향미주국, 쌀누룩, 밀누룩, 한국형 고량주용 누룩 등도 띄우고 있다. 향미주국은 찹쌀과 녹두가 8대2로 들어간 누룩이다. 살짝 익힌 녹두를 사용, 누룩 발효가 끝나면 누룩에서 구수한 향이 난다. 술을 빚으면, 과실향들이 풍부한 특징을 갖는다. 생녹두를 쓴 누룩에는 꽃향, 익힌 녹두에는 과실향이 난다.

그렇다면,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한영석 청명주는 어떤 누룩을 쓸까? 네 가지 누룩을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첫번째 생산에는 쌀누룩을, 두번째는 향미주국을 썼다. 그밖에 녹두국, 향온국도 사용한다. 쌀누룩을 쓴 청명주와 향미주국을 쓴 청명주는 미세하게 향과 맛이 다르다. 그러나, 청명주의 특징인 ‘맑은 산미’는 어느 누룩을 사용하더라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유기산적인 산미, 가벼운 산미는 사용하는 누룩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고 나타난다.

한영석 청명주가 지향하는 산미는 가볍다. 청명주 한잔을 마시고 잔을 내려놓을 즈음에는 산미가 입안에 맴돌지 않을 정도로 짧다. 사과를 한입 베어 먹으면 신맛이 나지만, 사과를 다 먹고나서는 신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청명주 역시 술을 마시고 나서는 입안에 신맛이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가볍다.

한영석 청명주의 신맛(산미)을 얘기할 때 누룩 말고도 빼놓으면 안되는 게 있다. ‘저온발효’다. 청명주의 가벼운 신맛, 초보자도 좋아하는 신맛은 좋은 누룩을 쓴 탓이 크지만, 상큼한 신맛을 결정짓는 것은 저온발효다.

누룩실을 나와 한영석 대표가 안내한 양조장 발효실의 온도는 13.8도였다. 대개는 13.5도에 맞춰놓는다고 했다. 누룩 향미주국을 쓴 청명주가 발효 중이었다. 발효를 시작한지 일주일 정도 지난 청명주가 스테인리스 발효탱크 안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내며 끓고 있었다. 알코올 향은 강하지 않았다. 한 대표는 “효모들은 25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활동이 왕성한데, 13도 안팎의 낮은 온도에는 효모들이 힘겹게, 천천히 알코올 발효를 한다”고 말했다.

양조장 발효실 온도를 13도까지 낮춰 놓는 이유는 저온발효를 위해서다. 효모활동이 너무 왕성하면, 다른 유기균들이 들어올 여지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낮은 온도를 설정해, 효모 활동을 어느 정도 제한하면, 술에 다양한 향을 내는 유기균들도 활동하기 좋아져, 결국 술의 향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알코올 발효가 더디게 진행돼 발효에만 60일이 소요된다. 청명주의 상큼한 신맛 비결은 첫째 누룩, 둘째 저온발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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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의 발효연구소에서 띄운 누룩을 빻아서 말리고 있는 모습. 이 과정을 법제라고 한다. 법제를 거치면 누룩의 살균기능이 강화된다. /박순욱 기자
그리고 세번째로 언급할 한영석 청명주 비결(가벼운 산미)은 산장법(쌀을 고두밥으로 찌기 전에, 물에 오래 불리는 것)이다. 청명주 원료는 100% 찹쌀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는 찹쌀로 죽이나 떡을 만들어 밑술로 만들고, 찹쌀로 만든 고두밥을 덧술로 쓴다. 그런데, 한영석 청명주는 좀 다르다.

우선 밑술보다 덧술 준비를 먼저 시작한다. 덧술에 쓸 찹쌀을 물에 담가둔다. 여름에는 3일, 겨울에는 거의 10일을 물에 담가둔다. 쌀을 살짝 삭히는 정도다. 이것이 산장법, 쌀 침지법이다. 쌀을 이렇게 물에 불리고, 쌀을 불렸던 물을 버린 다음 쌀만 씻어 고두밥으로 찐다. 이렇게 하면 술에 깔끔한 산미가 생긴다는 게 한 대표의 설명이다. 또한, 덧술로 쓸 고두밥을 찌기 직전에 물과 쌀 비율을 10대1로 죽을 만들어 밑술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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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의 발효연구소는 전북 정읍의 내장산국립공원 안에 있어 누룩과 술 빚는데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박순욱 기자
현재 청명주는 한달에 1톤 정도 생산한다. 375ml 기준, 3500병 정도라고 한다. 시장 반응이 좋아, 발효탱크를 추가로 들여왔고, 올 하반기에는 월 5000병 생산이 가능하다.

그런데 한영석 청명주는 왜 누룩을 네가지나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걸까? 쌀누룩, 향미주국, 향온국, 녹두국도 쓴다고 한다. 같은 술에 여러 누룩을 번갈아 쓰는 예가 흔하지 않다. 누룩 장인 한영석 대표의 속셈은 도대체 뭘까? 자신이 만든 누룩을, 청명주를 통해 마케팅(홍보)하려는 의도일까? 그 대답을 들으려면 다시 그의 누룩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

5년 전 정읍으로 발효연구소를 옮길 때만 해도 한 대표는 양조장을 차릴 계획은 없었다고 한다. 고향인 고창 인근의 이곳 정읍으로 내려올 때만 해도 수원에서 시작했던 누룩 공방 규모를 키울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누룩이 잘 띄워지는 자연조건에 맞게 오랜 시간과 정성을 다해 띄운 한영석 누룩이 정작 시장에서는 제값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전통주에는 발효제로 누룩이 쓰이지만, 전통주 양조장에서 실제로 주로 사용하는 누룩은 개량누룩, 입국이다. 개량누룩은 특정 곰팡이균을 뿌리는 방식으로 누룩을 대량으로 만들고, 띄우는 기간도 짧다. 한영석 누룩은 띄우는데 60일 걸리는데, 대개 20일 넘는 공장형 누룩도 드물다. 시간은 곧 돈이다. 한영석 누룩은 개량누룩보다 비쌀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양조장에서는 저렴한 개량누룩을 선호하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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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석의 발효연구소 한영석 대표가 내놓은 술들. 왼쪽부터 청명주, 하향주, 동정춘. 이중 동정춘은 술 빚는데 무려 일년이 걸린다. /박순욱 기자
또, 한가지 누룩 명인 한영석 대표를 절망케 한 사실은, ‘전통누룩은 전통주를 대량으로 만드는데 적합하지 않다’는 근거 없는 얘기였다. 전통누룩으로 술을 빚으면, 역겨운 누룩취가 많다는 말도 떠돌았다. 그래서 한 대표는 고민 끝에 ‘전통누룩으로 얼마든지 좋은 술을, 그것도 대량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전통주를 만들기로 하고, 그 첫 작품으로 한영석 청명주를 만든 것이다. 한 대표의 설명이다.

“아무리 내가 만든 누룩이 좋다고 설명해도, 양조장 대표들이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영석 누룩이 좋다는 것을 말로만 얘기하지 말고, 술을 만들어 술맛으로 평가받게 하자는 게 청명주를 만든 의도였다. 술맛이 좋으면 그 술에 쓰인 누룩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이다.

이번에 한영석 청명주가 각광을 받았던 이유도, 누룩을 자연발효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갖가지 향들이 술에 잘 스며 있기 때문이다. 한영석의 술들은 한영석의 누룩을 쓰기 때문에, 자연발효에서 나오는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맛의 특징도 있다. 누룩의 자연발효 때문에 나오는 향긋한 견과류의 향이 있다. 이게 다 누룩 관련이다. ‘좋은 누룩을 써야 좋은 술이 빚어진다’는 것을 청명주가 말해주고 있다. 한영석 누룩이 다르다는 것을, 한영석 누룩으로 만든 술로 보여주고 싶었다. 누룩 자체로는 비교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어차피 누룩은 좋은 술을 만들기 위한 중요 재료이기 때문에 완성품인 술로 (어떤 누룩이 좋은지)승부가 난다는 생각에서다. 실제로 한영석 청명주 출시 이후 누룩도 더 많이 팔리고 있다.”

한영석 대표를 누룩 세계로 인도한 한국가양주연구소의 류인소 소장 역시 한국의 대표적인 ‘누룩 전도사’다. 한 대표는 가양주연구소에서 2년 동안 전통주를 배우다가, 전통술에 있어 누룩의 중요성을 깨닫고 누룩공부를 시작했다. 한 대표는 “류인수 소장으로부터 ‘좋은 술이 되려면, 우선 누룩이 좋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누룩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영석 대표는 청명주 성공에 힘입어 하향주, 동정춘, 호산춘, 백수환동주 등 다음에 내놓을 술들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발효 전문가’ 한 대표의 관심은 술에만 있는게 아니다. 누룩이 들어간 된장, 소금, 고추장 같은 발효조미료 생산도 곧 시작된다. 기술이전을 통해 마을공동체에서 위탁생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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