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배불정책과 전통주

조회 수 3401 추천 수 5 2006.04.26 20:00:31
본 자료는 조선이 실시한 "배불정책(불교배척정책)"으로 우리의 전통 술빚기가 사찰에서 일반 가정으로 전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것을 서술한 내용으로 이 글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저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선의 배불정책과 우리술


고려의 귀족정치에 환멸을 느낀 신진사대부의 등장과 함께 위화도 회군으로 군사권을 장악한 이성계가 사대부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오르게 됨으로해서 정권을 잡은 세력들은 재정낭비가 큰 사찰의 불교행사와 사찰건립을 비판하고, 승려들의 토지겸병, 고리대금업, 상업활동, 군역도피로 부패가 심했던 불교는 성리학자들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되며, 배불정책으로 불교의 힘은 크게 약화됩니다.

다음은 조선 태종(1401-1418)때 시행한 배불정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1, 종파의 병합
2, 사찰의 수를 줄임
3, 승려를 환속 시킴
4, 사찰의 토지를 국유화
5, 왕사의 국사제도를 폐함
6, 도첩제를 엄하게 시행
7, 사찰에 딸린 노비를 군정에 충당
8, 능사제도 금지



<고려사> 형법에는 "현종 원년 (1010)에 승려가 술을 빚는 것을 금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사찰에서 조주업이 성행하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선의 배불정책은 이러한 사찰의 대표적 상업 활동중 하나인 조주업을 사찰에서 할 수 없게 함으로해서 술 제조의 방법과 기술이 일반 백성에게 널리 보급되는 계기가 됩니다.

고려시대에는 사찰의 힘이 막강하고, 상업활동으로 경제력으로 안정된 생활을 위해 승려가 되려는 사람이 많았으며 많은 불교행사와 사찰 건립으로 양조장의 일 또한 많아 졌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곳에서 일할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으며 승려가 된 사람들은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양조 기술을 익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이 시행한 배불정책으로 사찰의 힘이 약해져 술을 빚어 판매 할 수 없게 되었으므로 사찰이 독점하던 양조기술은 그곳에서 일하던 승려들에 의해 일반 대중에게 알려지게 됩니다. (서양의 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찰에서의 상업활동이 사라지게 됨으로서 조선의 사람들은 집에서 직접 술을 빚어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술의 제조가 사찰에서 이루어 졌으므로 집에서 직접 술을 빚는 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술의 제조법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행히 환속한 승려들에의해 양조기술이 일반 대중들에게 전해짐으로서 우리 술은 그 맥을 이어 나가게 됩니다. 또 다른 방법은 사찰에 직접 찾아가 술 제조방법을 배워오는 것도 있지만 조선의 배불정책으로 여성의 사찰 출입이 금지되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고려시대 불교의 지지기반은 귀족과 여성이었으므로 사찰에는 여성들의 출입이 빈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들의 사찰 출입은 그 시대 많은 문제점을 낳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세조(14년) 오성정 이치의 아내 정씨와 실륜이라는 정인사 주지와의 간통 사건입니다.

"이치가 일찍 죽어 그의 아내 정씨는 이치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정인사를 찾았다가 실륜과 눈이 맞아 간통한 사건"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 고려 후기에는 부녀자의 사찰 출입을 제한 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배불정책의 시행과 함께 여성의 사찰 출입을 금지하였습니다. 또한 중의 도성 출입을 금하였으며 과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엄히 다스렸다. 과부들이 외출할 수 있는 유일한 건더기가 바로 사찰의 출입이었는데 이를 막게 되자 여성들의 행동 방경은 더욱 좁아져 주방 살림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렇게 승려들에 의해 전해진 양조 기술은 여성들이 주방 살림에 많은 시간을 보냄으로서 당연 술 빚는 방법과 기술이 날로 발전했을 것입니다.

양조 기술면에서 점차 고급화되는 양상을 나타냅니다. 술의 원료도 멥쌀 위주에서 찹쌀로의 전환이 두드러지고, 발효도중 곡물과 누룩으로 덧술하여 알콜도수를 높인 중양주(重釀酒)류가 더욱 발달하였던 것입니다

중양법에 있어서도 미리 효모를 증식시킨 부본(腐本:술밑)을 밑술과 함께 사용하는 방식으로 한층 발전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덧술을 여러 번 하여 만든 진한 고급 청주를 춘주(春酒)라고 하여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문헌에 남아있는 300여 가지의 조선시대 술 중에서 춘주류는 백하주, 삼해주, 이화주, 청감주 등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꽃향을 가미한 화향주, 약제를 가미한 약용주 등이 이후에 많이 빚어졌습니다.

중종실록에 소주 마시는 사람이 많아져 양곡의 소비가 크고 소주로 인한 피해가 크다는 기록을 통해서 그 소비량을 추측하기에 어렵지 않습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는 청주와 소주를 조화시킨 합주류(合酒類)가 새로이 개발되었는데 이중 과하주(過夏酒)와 송순주(松荀酒)가 특히 뛰어나 애용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조선의 배불정책은 우리술을 일반 대중들이 빚어 마실 수 있게 함으로서 다양한 맛과 향을 지닌 많은 술들이 생겨나게 되어 가양주 문화를 정착시키게 됩니다.

그러나 600년동안 이어진 가양주 문화는 일제의 침략과 문화 말살 정책으로 끊기게 됩니다.

우리의 가양주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단절의 위기에 서게 되었습니다. 1907년 일제에 의해 공포된 주세령은 주세징수와 자가양조 금지, 밀주 방지가 목적으로 술제조에 대한 전면적인 면허제가 실시되었습니다. 가정에서의 술 제조는 일체 금지되었고, 우리의 술은 일제가 지정한 제조 방식으로의 약주, 탁주, 소주로 획일화되었습니다.

전래의 고급 전통주는 자취를 감추었고 일본식 청주(正宗), 맥주, 양주 등이 그 자리를 차기하였습니다. 1907년 당시 일곱 집에 한 집 꼴로 빚었던 가양주가 1930년대에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상업적인 목적에 따라 술의 질은 떨어졌으며, 개량식 소주가 일반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광복이후에도 우리술은 더 변질되어 가게 됩니다.

1960∼70년대, 술의 소비량이 급속히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면 단위마다 들어선 막걸리 양조장은 현실을 잊는 가장 값싼 수단을 제공하여 일시적으로 탁주의 소비량이 증가되기도 하였습니다.

1965년 소주와 청주, 탁주를 포함한 모든 술을 쌀로 빚지 못하도록 한 양곡관리법이 시행되었습니다. 일부 가양주만이 밀주라는 이름 하에 간신히 유지되었습니다. 곡류를 전혀 넣지 않고도 알콜 농도 95%의 주정을 물에 희석시켜 만들 수 있는 희석식 소주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도 이 때입니다. 막걸리의 뒤를 이어 희석식 소주가 '서민의 술'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그 명맥이 거의 끊어졌던 전통술이 복원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불합리한 규제와 제약이 조금씩 풀리면서 전통술 50여종이 재현되었고 전통주에 대한 제조허가도 처음 내려졌습니다.

1990년대에는 우리것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크게 고조되었고, 이와 함께 탁약주 제조에 쌀을 사용하는 것과 개인이 술을 빚어 마시는 것이 허용되어 전통술문화 복원 움직임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불행중 다행히도 1995년 집에서도 술을 빚어 마실 수 있도록 함으로해서 그 찬란했던 가양주 문화의 다 꺼져가던 불꽃을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잊혀진 우리술을 알리고 조선시대의 찬란한 가양주 문화가 뿌리 내리도록 노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점점 변질되어가는 우리술을 원래의 자리로 돌리고 현대식 주방구조에 맞게 술 빚는 도구의 제공으로 모든 사람들이 집에서도 쉽게 술을 빚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인공감미료와 발효제의 사용을 막고, 전통적 발효제인 누룩의 제조법과 사용법을 널리 알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질 좋은 전통누루과 현대식 주방구조에 맞는 도구의 사용으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술을 빚을 수 있다면, 질 좋은 술들이 만들어 지게 되어 세계속에서 인정받은 좋은 술이 생겨날 것입니다.

옛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자칫 오랫만에 찾아온 좋은 기회를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설 수 없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항상 염두해 둬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전통주의자존심 "술독" www.suldo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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