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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박순욱의 술기행](45) “귀한 누룩 덕분에 막걸리에 열대과일 향이 나요."

조회 수 3386 추천 수 0 2021.02.26 15:47:26

입력


한국 대표적 전통주교육기관인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서울양조장 대표), 막걸리 ‘서울' 출시
직접 만든 누룩인 설화곡 사용, 우유처럼 하얗고 시트러스한 향 돋보여
술병 위 맑은술과 침전물이 5대1 비율...전용 디켄터 사용하면 시각적 재미
바텐더 하다 전통술 관심가져...일본유학 좌절이 전통주 몰입 계기
"상업양조 경험 쌓아 한국 최초의 양조대학 설립이 목표"


키가 180cm이 훨씬 넘었다. 고등학교까지 축구선수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이영표, 김남일이 동년배 선수였다. 그러나, 고3때 무릎을 다쳐 축구를 포기해야 했다.

그의 사회생활 첫 직업은 서울 압구정동의 한 웨스턴바 바텐더였다. 밤에 일하고 낮에 쉬는 올빼미 생활 4년만에 바 매니저가 됐다. 어느날, 바에 진열된 수백병의 외국술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 "왜 한국술은 한병도 없지?" 전통술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게 그때였다. "명색이 바 매니저라면 외국술은 기본이고, 업장에서 취급하지 않는 우리술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낮에 쉬는 대신 지방의 양조장, 가양주 장인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직업상 외국술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다. 특히 일본 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어 바텐더 생활을 하면서 일본유학 준비를 차근차근 했다. 새벽 4시까지 일하고, 아침 6시에 시작하는 학원 일어 강좌를 듣고서 퇴근했다. 2년간을 그렇게 일어를 열심히 팠다.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도 점차 커졌다.


 

서울양조장 류인수 대표가 새로 출시한 막걸리 ‘서울'을 소개하고 있다. 술 색깔이 우유처럼 하얗다. /박순욱 기자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의 일본유학은 좌절됐다. ‘일본 최고의 양조대학인 도쿄농업대학에서 일본 술을 죄다 마스터할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유학길에 나섰을 때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도쿄공항 입국심사에서 그는 ‘강제출국' 처분을 당했다. 유치장에 하루 갇혔다가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당시 한일관계가 무척 좋지 않았던 걸로 그는 기억했다.

"일본대학 입학 전에 1년간 도쿄 한 어학원에서 일본어를 배우려고 했어요. 어학원 등록 서류도 보여줬지만, 입국 심사 담당자는 외면했어요. 그 이유를 지금도 모르겠어요." 한달 뒤 다시 일본으로 건너 갔지만, 그의 여권에는 재차 ‘강제출국' 딱지가 붙었다. 눈물이 났지만 오기도 생겼다. "오냐 이놈들아. 내가 ‘한국 최고의 술전문가’가 돼서, 너희 일본을 이겨줄테니 두고보자." 철창에서 그렇게 와신상담했다. 그리고 20년 남짓 세월이 흘렀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과 더불어 ‘한국 최고의 전통주 전문가'로 불리는 한국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 얘기다. 2010년 설립된 가양주연구소는 전통술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거의다 교육과정을 이수했을 정도로 ‘전통주 교육의 메카'로 통한다. 이곳 교육생 출신으로 양조장을 차린 사례가 수십곳이 넘는다.

그런데 그가 우리술이 아닌 일본술을 배우러 유학까지 가려고 했다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런데, 강제출국은 또 무슨 사연일까? 만약, 그의 일본유학이 성공했더라면? 그는 말했다. "아마 서울 어디서 이자카야(일본식선술집) 운영하다가 이번에 코로나 된서리 제대로 맞았겠죠. 하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주 전문교육기관인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을 인터뷰한 것은 그가 최근 ‘외도(?)’를 한 때문이다. 교육용으로 가양주연구소 한켠에 2017년에 설립한 서울양조장이 ‘서울'이란 브랜드의 막걸리를 지난 1월에 출시했다. 서울양조장 대표가 류 소장이다. 교육기관 대표 답지않게 시중판매용 술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은 것이다.

이미 그를 거쳐간 수많은 제자들이, 그가 준 레시피(술 제조방법)를 받아 다양한 술을 시중에 내놓은지 거의 10년이 됐다. 그런데, 제자들이 만드는 술과 치열한 경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상업용 술을 출시하다니? 대박을 치면 제자들에게 욕먹고, 시장진입에 실패하면 또 얼마나 망신인가. 이럴 줄 뻔히 알면서도 술을 출시한 그의 사연이 궁금했다.

서울양조장 류인수 대표가 지난 1월말에 출시한 막걸리 ‘서울'은 직접 만든 누룩으로 오양주(한번의 밑술과 네번의 덧담금을 한 고급술) 스타일로 만들었다. 술 색상이 우유처럼 하얀 것에 착안, 패키지 병을 투명 우유병 비슷한 모양으로 정했다. 그 위에 빨간색 ‘크라운 캡’ 뚜껑을 덮었다. 500ml 한병 소비자가격이 1만2000원선. 주점에선 2만원쯤에 팔린다.

류 대표가 쌀가루로 직접 만든 누룩인 설화곡으로 발효한 덕분에 열대과일 향이 나는 게 이 술의 특징이다. 또 막걸리 병 윗부분의 맑은술과 침전물이 5대1 비율로, 전용디켄터에 따르면 섞이는 모습이 시각적 재미를 더해준다. 이미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는 ‘디켄터에 따라 마시는 이색 막걸리'란 글과 사진이 다수 돌아다닌다.

전통주전문가들의 시음 평가도 호의적이다. 경기농업기술원 이대형 박사는 "첫 코에서 느껴지는 향은 바닐라, 참외 같은 다양한 과일향, 꽃향이 느껴졌다"고 했고, 대동여주도 이지민 대표 역시 "입안에서 착 감기는 우유같은 질감을 느꼈다"고 평했다. 백곰막걸리 이승훈 대표는 "마시기 편한 느낌에, 과일향이 도드라지지만 가격이 다소 센 것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터뷰는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이 아닌 서울양조장 류인수 대표 자격으로 진행됐다.


-가양주연구소 운영 10년이 넘었다. 직접 양조장을 차린 계기는?

"전통주 교육기관인 한국가양주연구소는 2010년에 설립, 재작년에 10주년을 맞았다. 양조장을 하겠다는 계획은 전혀 없었지만 2016년에 소규모주류 제조가 허용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법안이 허용됨으로써, 소규모 설비를 갖춘 주류제조 면허 취득자는 탁주, 약주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전까지는 정부가 하우스 맥주는 허용했지만, 하우스 막걸리는 허용하지 않았다. 소규모주류 제조는 공간의 제한보다는 (생산설비)용량의 제한이 있다. 1kl 이상 5kl 미만의 저장용기를 보유한 제조장은 소규모주류 면허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전에는 훨씬 큰 설비(탁주와 약주는 5kl 이상)를 갖추어야 해, 진입장벽이 높았다.

‘이 법률안을 만드는데 참여한 사람으로서, 이 법안에 무언가 책임을 져야겠다, 소규모 양조장이라도 만들어 교육시설로 활용해도 좋겠다, 그러면 교육생들이 양조장 견학을 외부로 가지 않아도 되겠다 ‘이런 생각에서 2017년에 양조장을 만들었다. 연구소 교육 일정에 ‘지도자 과정'이 있는데, 그분들이 교육기관 내의 양조장 시설을 활용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분들은 양조장 창업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2017년에 서울양조장을 만들었지만, 술을 출시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는 여기를 졸업한 많은 교육생들이 양조장을 만들어 술을 내놓고 있는데, 이들에게 술을 가르친 내가 술을 만들어 판다는 게 도의적으로도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출시했는데.

"그런데, 양조장 허가를 받고나서 2년 이내 술을 출시하지 않으면 양조장 면허가 취소가 된다는 걸 알게 됐다. 2019년말까지 술이 안 나오면 양조장 운영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용으로 양조장을 만들었는데, 양조장이 없어지면 더 이상 교육용으로 활용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일단 1년을 연장시켰다. 그게 2020년 말이었다.


 

서울양조장의 신상품 막걸리 ‘서울’. 가운데 병이 유리 디켄터다. /서울양조장 제공


진퇴양난, 이도저도 어려운 상황이 됐다. 술을 출시하지 않으면 양조장이 문을 닫을 형편이고, 술을 출시하자니 제자들이 눈에 밟히고. ‘전통주 대가는 얼마나 좋은 술을 만드는지 보자’는 주변의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전통주 전문인력 양성기관인데다, 그 중에서도 정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상시 운영하는 유일한 기관인데, 그런 곳의 수장이 상업 술을 만든다고 하니 주변에서 얼마나 관심이 많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에 술을 출시한다면, 하나를 내놓더라고 제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면허 유지 목적으로 살짝 술 출시하는 정도는 안된다고 봤다. 내가 술 제조방법을 교육하는 사람인데, 제대로 안된 술을, 내 이름을 걸고 내놓는다는 것은 용납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조장 유지를 위한 꼼수’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할 거면 제대로 해보자’고 해서 만든 게 이번에 나온 ‘서울'이란 막걸리다. 올 1월 말에 정식 출시됐다."

-이번에 약주, 소주가 아닌 막걸리를 만든 이유는?

"막걸리는 만들기 쉽기 때문에 선택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해다. 막걸리는 다른 술에 비해 굉장히 만들기 어려운 술이다. 양조장 입장에서 가장 어려운 술이 막걸리다. 왜 그런고 하니 기본적으로 막걸리는 효모가 살아 숨쉬는 생막걸리인데다 알코올 도수가 낮아 상하기 쉽다. 그래서 막걸리는 관리하고 통제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이번에 술을 출시하면서 ‘가장 어려운 술(막걸리)를 먼저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있다. 또, 막걸리는 도수가 낮다보니까 제조, 혹은 유통과정에서 산패 등의 문제가 가장 생기기 쉽다."

-품이 많이 드는 오양주로 만든 이유는?

"처음부터 오양주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설화곡이라는 누룩을 사용하기 위해 부득이 오양주 스타일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쌀누룩의 일종인 설화곡의 특성은 밀누룩에 비해, 발효에 필요한 효모의 개체 수가 적다. 그래서 당화력이 밀누룩에 비해 떨어진다. 대부분의 양조장들이 밀누룩을 많이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설화곡 누룩을 쓸 경우, 한번 담금에 알코올 도수가 충분히 높게 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술 제조 도중에 술이 상할(산패) 우려가 높다. 그래서 덧담금 회수를 늘려서 원하는 알코올 도수까지 높였다. 효모를 최대한 증식시켜서 술을 빚다 보니까 오양주 방법이 설화곡의 단점(당화력이 낮다)을 장점화시킬 수 있는 제조방법이 된 것이다. 누룩의 단점을 제조방법(오양주)을 통해 극복한 사례다."

-굳이 당화력이 떨어지는 설화곡 누룩을 고집한 이유는?

"내 책 ‘한국 전통주 교과서'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자기 누룩을 쓰지 않을거면 양조장도 만들지 마라'고 했다. 술은 미생물(누룩)이 만드는 것인데, 양조장만의 미생물을 갖고 있지 않으면, 그 양조장의 특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시중에서 파는 같은 누룩을 사서 술을 빚으면, 그 누룩을 쓰는 양조장 술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거의 없다고 본다.

술은 미생물의 차이에 따라 술맛이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에, 나만의 미생물(누룩)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 ‘나만의 누룩’을 고집하게 됐다. 설화곡은 내가 만든 누룩이고 ‘서울’은 설화곡을 사용한 유일무이한 막걸리다."

-술은 어떻게 만드나?

"쌀, 누룩, 물을 섞어 한달 정도에 발효가 마무리된다. 그후 안정화에 일주일이 더 걸린다. 이 과정에서는 온도를 0도 정도로 낮춰 최대한 효모를 통제해서 추가적인 발효가 잘 안 일어나도록 하는게 안정화 단계다. 안정화 단계 도중에 가수(알코올 도수를 낮추기 위해 물을 추가한다)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알코올 도수가 낮아지면 다시 추가발효가 진행이 된다. 추가발효가 끝나면 다시 온도를 0도로 떨어뜨려 안정화를 시키고 병입을 하게 된다. 병입하고 나서도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야 외부로 납품, 판매한다. 병입 후 일주일 지나면 술의 맑은 층(맑은술)과 탁한 층(침전물)이 분리된다. 술 빚기 시작해 40일 정도 지나서 병입한다고 보면 된다."

-술병 속의 맑은술과 아래 침전물의 이상적 비율은?

"5(맑은술)대1(침전물) 정도가 가장 바람직하다. ‘서울’은 가급적 디켄터를 사용해서 마시라고 권하는데, 디켄터에 술을 따르면 먼저 윗 부분의 맑은술이 흘러나오고 그 다음에 침전물이 나와 디켄터에서 자연스럽게 고루 섞이게 된다. 흔들 필요가 없다. 알코올 도수를 7.5도로 맞춘 이유도 이 비율(5대1)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디켄터를 활용하기 위해 최적의 맑은술과 침전물 비율을 맞추다 보니 도수가 7.5도가 됐다."

-얼마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 ‘상업양조의 길을 가보는 건 본인의 목표인 대한민국 최초이면서 최고의 한국양조대학 설립의 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최종적인 목표가 우리나라에 양조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해외의 유명 양조대학을 가보면 그 안에 양조시설이 다 돼있고, 양조교육을 할 수 있도록 돼있다. 제품 판매도 한다.

우리나라 경우는 양조대학 자체가 없고, 일부 관련 대학조차도 학부 과정에 양조교육 커리큘럼이 거의 없다. 대학원 과정에 가서야 소믈리에 혹은 양조경영 과정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그 정도가 전부다.

10년간 가양주연구소에서 술을 가르쳤지만, 나는 취미로 술을 배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주로 교육했다. 하지만 제자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상업양조로 창업을 했다. 나는 상업 양조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 그런데 상업양조 자체를 모르는 내가 상업양조를 염두에 두고 있는 제자들을 가르친다? 이건 넌센스다.


 

서울양조장 류인수 대표는 “서울 막걸리는 내가 만든 누룩인 설화곡의 단점(당화력 부족)을 제조방법(오양주)로 극복한 명품 술"이라고 말했다. /박순욱 기자


하지만, 내가 상업양조를 직접 하면 상업양조에 대한 지식이 축적된다. 이런 경험들을 많이 모아 양조대학을 설립하겠다는 것이다. 내가 양조장을 차려 이번에 술 출시까지 한 것은 양조대학 설립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물을 너무 많이 타는 술 아닌가? 원주 도수를 낮출 수 없나?

"전혀 그렇지 않다. 도수가 더 낮은 맥주는 시각적으로 표시만 안 날 뿐이지, 물을 더 많이 탄다. 기본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낮다는 것은 그만큼 물이 많이 들어갔다는 의미다.

중요한 것은 발효방법의 차이다. 대부분 맥주는 ‘단행복발효(당화 공정과 알코올발효 공정이 구별되는 두 단계의 발효. 녹말을 원료로 하여 맥주를 만드는 방법이 여기에 해당된다)’라고 해서 술(맥즙)을 끓여서 만든다.

우리나라는 맥주 제조법과 달리, 전통적으로 병행복발효(당화공정과 알코올 발효 공정이 동시에 일어나는 발효법)를 했다. 당이 생성되면서 동시에 알코올이 만들어지는 발효법이다. 이 방법의 경우, 도수가 낮으면 술이 시어진다(산패). 알코올 도수가 낮으면 젖산균이 과도하게 젖산을 만들어내서 술의 신맛이 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병행복발효에는 최대한 알코올 도수를 빨리 올려야 신맛을 내는 균들의 증식을 억제하고, 안정적인 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안정적으로 술을 만들려면 빨리 도수를 14도까지는 높아져야 한다. 그래야 다른 잡균에 의해 술이 오염되는 걸 막을 수 있다. 원주 도수를 낮출 수 없는 이유다."

-막걸리를 섞기 위해 디켄터를 사용하는 것과 흔히 막걸리 병을 따기 전 흔드는 것에 차이가 있나?

"차이가 꽤 크다. 첫번째, 디켄팅을 하면 공기와의 접촉이 많아져 술 자체의 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병입한 후, 술병 안에는 공기가 많지 않다. 그래서 술 뚜껑을 따지 않은 상태에서 술을 흔들면 침전물과 맑은 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소량의 공기가 섞이는 정도다. 반면에, 디켄팅을 하면, 술이 디켄터로 옮기는 과정에 많은 공기와 접촉하게 된다. 그러면 술 고유의 향이 깨어나게 된다. 이번에 출시한 ‘서울’막걸리는 디켄팅을 하면 곡물향은 물론, 과일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과일향은 공기와의 접촉을 통해 깨워야 나는 습성이 있어, 디켄터 사용을 권한다.

두번째 이점은 막걸리를 취향대로, 깔끔하거나 묵직한 맛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막걸리는 호불호가 갈리는 술이다. 어떤 사람은 약간 깔끔한 맛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반대로 약간 진한 텁텁함을 좋아한다. 디켄터는 이런 취향을 해결해줄 수 있다. 디켄터를 이용할 경우, 술병 밑에 있는 침전물을 다 따르느냐, 약간 남기느냐에 따라 술맛을 깔끔하게도 할 수 있고, 진하게 할 수도 있다. 가령, 침전물을 30%만 따르면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고, 진한 맛이 좋은 사람은 침전물을 다 따르면 된다.

세번째는 시각적 맛, 멋이다. 우리 술이 굉장히 크리미한 느낌인데, 디켄터에 따랐을 때 하얀 구름 같은 것이 피어나는 걸 볼 수 있어, 식욕을 돋군다. 이 술이 귀한 누룩인 설화곡을 사용한 오양주로 빚은 고급술이란 걸 아무리 강조해도, 뭔가 재미가 없으면 이 술을 먹을까? 싶었다. 그런데 디켄팅을 하면 맑은술에 침전물이 섞이는 과정이 정말 신기하고, 고급스럽다는 이미지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시각적인 즐거움을 느끼려면 디켄터를 사용하라는 것이다."

-그래도 막걸리와 디켄터 조합은 낯설다.

"SNS 반응은 뜨겁다. 인스타그램에 보면 ‘디켄터로 마시는 막걸리', ‘막걸리를 디켄팅해?’ 이런 글들이 많다.

반면에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와인 따라 하냐?’, ‘막걸리에 무슨 디켄터야?’ 이런 반응이 우려 서러웠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도 ‘주병(술병) 문화’를 진작에 즐겼다. 주병이 무엇인가? 도자기로 만든 디켄터다. ‘잘 만든 술을 예쁜 주병에 따라 마셨다’는 기록이 옛문헌에 많다. 주병은 고려시대에도 많았고, 조선시대에는 흔했다.

디켄터는 서양에서 본딴 게 아니라, 오랫동안 잊혀졌던 ‘주병 문화’를 디켄터를 통해 새로 끄집어냈을 뿐이다. 다만, 시각적인 효과를 위해 투명한 유리로 디켄터를 만들었을 따름이다."


 

2010년에 설립한 한국가양주연구소는 2019년에 10주년을 맞았다. /서울양조장 제공


-막걸리 ‘서울’은 술 이름으로 가능한가?

"식약처에서 ‘서울'이란 이름으로 허가가 났다. 지명인 서울은 고유명사라, 상표등록은 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그동안 사용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서울을 자기 브랜드로 사용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양조장이라 이름을 지었고, 제품명도 서울로 정했다. 하지만 ‘서울’이란 이름과 술의 정체성을 연결시키기는 쉽지 않았다. 사실은 작년 7월쯤에 서울 말고 다른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하려 했으나 식약처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아, 작년 11월에 서울로 술 이름을 정했다. 그 후 두달만에 제품을 출시했다."


-핵심 원료인 쌀은 지방 것을 쓰는데, 서울이란 이름이 맞나?

"우린 쌀보다 더 대단한 걸 서울에서 쓰고 있다. 누룩을 서울에서 만들고, 균이 서울균이다. 프랑스 와인업계에서 말하는 ‘떼루아’가 바로 서울이다. 술 만드는데 쌀보다 누룩이 더 중요하다. 누룩에 따라 술맛이 다 달라진다. 누룩에 있는 미생물에 의해 술이 만들어지는 건데, 우리는 자체적으로 서울 방배동에서 누룩을 만들고, 서울에 있는 자연균들이 누룩에 달라붙는다. 완전 떼루아다. 누룩을 이곳에서 만든다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해 수확한 포도의 품질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빈티지를 따지지 않나? 막걸리의 경우, 누룩과 쌀, 물 이 세 가지로 만드는데, 이 셋 중 누룩에 따라서 맛이 많이 달라지는 것이지, 쌀에 의해 술맛이 많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쌀이 중요하긴 하지만, 술맛을 좌지우지하는 누룩이 더 중요하다."

-크라운 캡과 우유병 비슷한 패키지 병도 특이하다.

"술병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병이다. 이 술은 우유처럼 하얗다. 누룩 이름인 ‘설화’는 눈꽃이란 뜻이다. 술 색상이 시각적으로 우유같은 느낌이 있다. 술 질감도 우유같다. 우유같은 느낌을 잘 표현하기 위해 우유병 비슷한 병을 선택했다.

크라운 캡은 차별성을 주기 위해 쓰고 싶었다. 막걸리에 크라운 캡을 사용한 사례가 없었다. 혹시 생길 문제는 제조방법으로 해결했다. 이 술이 효모가 살아있는 생막걸리인데, 병 안에서 후발효가 일어날 수 있다. 발효 때 생기는 탄산에 의해 술이 터져, 흘러 넘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자칫 병이 깨져서 사람이 다치는 문제, 유통과정에서 깨질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크라운 캡을 쓴 이유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막걸리에도 크라운 캡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크라운 캡의 빨간 색이 술의 흰색과도 잘 대조를 이룬다고 여겼다. 그래서 빨간 색의 크라운 캡이 포인트(특징, 개성)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크라운 캡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병 뚜껑을 땄을 때 터졌어요' 이런 지적은 없었다. 제조 과정에서 안정화를 많이 시켰기 때문이라고 본다. 병입 상태에서 후발효가 가급적 적게 일어나도록 제조과정에서 신경을 많이 썼다."

-막걸리 향에서 열대과일 향이 나는 까닭은?

"100% 누룩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쌀이 아니라, 누룩에 있는 미생물 덕분에 열대과일향이 나는 것이다. 설화곡이라는 누룩 자체도 시트러스한 과일향이 난다. 누룩이 갖고 있는 유기산이 풍부한 과일향을 느끼게 한다. 쌀의 잔당과 유기산이 합쳐져서 약간 열대과일 향을 낸다."

-누룩 함유량은?

"오양주이기 때문에 누룩 함량도 높다. 쌀 대비 30%를 넣었다. 쌀누룩의 일종인 설화곡은 당화력이 밀누룩에 비해 떨어진다. 그래서 누룩을 많이 넣는다. 밀누룩은 대개 10%정도 넣는다. 우리는 밀누룩의 세배를 넣었다. 술맛에 누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서울양조장의 신상품 막걸리 ‘서울’에 사용된 누룩 설화곡. 하얀 눈꽃 모양이다. /서울양조장 제공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음식과 달리, 술은 미생물(효모)이 만든다고 페북에서 언급했다. 그 의미는?

"술은 미생물이 만든다는 것은 미생물에 따라 술맛이 확연히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미생물은 누룩에 있다. 나만의 독특한 술을 만들려면 그 양조장만의 누룩이 있어야 되는 거고, 그 누룩에 있는 미생물들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좋은 술을 만들어낼 수 없다. 양조자는 쌀과 물, 누룩 등을 섞어 술이 만들어지기 좋은 환경을 조성할 뿐, 누룩 안에 있는 미생물들이 스스로 당화를 시키고, 효모가 알코올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알코올을 만드는 효모, 미생물의 특성을 잘 파악하지 않고서 좋은 술을 빚을 재주는 없다. 그만큼 자기 누룩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설화곡은 어떤 누룩인가?

"설화곡은 10년 전부터 교육생들에게 교육했던 누룩이다. 다 알려진 누룩이다. 단지 아무도 이 누룩을 상업화하지 않았을 뿐이다. 이 누룩은 만든 계기가 재미있다. 누룩을 만들려고 한 게 아닌데, 실수로 만들어졌다.

술을 만들려고 쌀가루(밑술로 죽이나 범벅을 만들기 위해 쌀가루를 사용한다)를 용기 안에 넣어두고, 깜빡하고 2~3일 정도 내버려뒀다. 친구들과 밖에서 술 마시다가 잠시 잊어버린 탓이다. 아차 싶어서 용기를 열어봤더니, 쌀가루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망쳤다고 버리려고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어차피 누룩은 곰팡이를 피워 만드는데, 이렇게도 누룩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해서 만들어진 누룩이 설화곡이다. 옛문헌에도 나오지 않은 누룩이다. ‘눈꽃같은 누룩'이라는 이름도 직접 지었다. 15년 전 일이다. 가양주연구소도 만들기 전이다."

-이 누룩으로 써보니 어땠나?

"기본적으로 당화는 되는데 알코올발효하는 힘이 부족했다. 효모 개체 수가 밀누룩에 비해 적었다. 하지만, 효모를 증식하는 게 목적인 덧술을 여러번 하면 당화력이 다소 떨어지는 문제는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덧담금을 하면서 찹쌀과 누룩을 계속 넣어줬다.

다만, 오양주다 보니 술이 완성될 때까지 한달 이상 걸리는 문제가 있어 그동안 설화곡을 사용할 엄두를 누구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번에 설화곡을 쓴 이유는 값어치 때문이다. 어느 정도 가격이 있는 술이라면, 그값에 어울리는 값어치가 있어야 한다고 여긴 것이다. 이 술을 ‘프리미엄 막걸리'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보다 한단계 위인 ‘명품 막걸리'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프리미엄 술'과 ‘명품 술’의 차이는 ‘자가 누룩을 쓰느냐'에 따라 갈린다. 시중에 ‘프리미엄 막걸리’로 팔리고 있는 술 중 상당수가 누룩을 사서 사용한다."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이 제자가 만든 다양한 술들을 소개하고 있다. /박순욱기자


-쌀은 지방산이다.

"충북 보은 멥쌀과 전북 김제 찹쌀을 사용했다. 그 이유? 데이타에 기인해 선택했다. 누룩보다는 편차가 작지만, 쌀에 따라서도 술맛이 차이가 난다. 연구소에서 교육을 많이 하니까 여러 지역의 쌀을 사용해봤다. 그 중에서 좋은 술맛을 내는 쌀이니까 사용한 것이다. 보은의 멥쌀은 품종도 삼광미를 사용하고 있다. 삼광미는 기본적으로 아밀로스 함량이 19~20%정도. 설화곡도 이 쌀로 만든다. 누룩도 잘되고, 술 발효도 안정적이다. 찹쌀은 또 종류에 따라 술의 단맛이 달라진다. 찹쌀의 단맛이 잘 나는 쌀이 김제 쌀이다. 깔끔한 단맛을 낸다.

소규모주류 제조의 가장 큰 장점이 전국에서 가장 좋은 곡물을 골라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세금혜택과 온라인판매가 허용되는 지역특산주의 경우, 해당 지역 밖의 곡물을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소규모주류 제조 술은 인터넷 판매가 허용되지 않는다. ‘서울’ 역시 온라인 시장에서는 팔 수 없다."

-월 생산량은? 어디에서 살 수 있나?

"월 3000병은 생산할 수가 있고, 최대한 생산한다면 월 6000병도 가능한 설비를 갖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술이 나가고 있어서, 출시 보름만에 초기 생산량이 다 소진됐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시설을 보완할 생각이다. 보틀샵, 일부 전통주전문점에서 취급하고 있다."

-연간 매출 목표?

"우리나라 양조장의 65%가 매출이 2억원이 넘지 않는다. 매출 10억 넘는 비중이 10%가 안된다. 그래서 우리는 출시 첫해인 올해는 연간 4억을 매출목표로 삼고 있다. 월 3000병이 꾸준히 팔린다면 가능한 수치다. 상업양조를 시작했으니, 양조장 운영이 잘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소규모주류 제조가 활성화될 것이고, ‘작은 양조장에서도 충분한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사례로 보여줄 책임이 내게 있다. 명색이 국내 굴지의 전통주 교육기관 수장이 시작해놓고, 잘 안되면 또 얼마나 망신이겠는가?"

-전통주 활성화를 위해 기여한 부분은?

"이전에 하고 싶었던 것들이 거의 다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소규모주류 제조 허용, 온라인 통신판매가 대표적이다. 종량세 전환 문제도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다만 굉장히 아쉬운 게 맥주와 탁주만 종전의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당시 나는 ‘전통주는 모든 주종이 종량세로 전환돼야 전통주 업계가 활성화된다’는 입장이었다. 아직까지 약주, 증류주는 종량세로 바뀌지 않았다.

만약 증류주가 종량세로 바뀌었다면, 양조장 이익도 많이 늘어났을 것이고, 소비자가격도 많이 내렸을 것이다. 그런데, 업계가 사실은 단합이 안됐다. 종량세 전환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종량세 전환은 약주, 증류식소주 등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가격은 낮아지고, 품질은 높아질 수가 있다. 만원짜리 막걸리든 1000원짜리 막걸리든 상관없이 이제 세금이 같다. 왜냐면 가격이 아닌 술량에 세금을 매기기 때문이다. 종량세는 품질의 고급화를 장려하는 세금정책이다.

또 하나 새로 제안할 것은 소규모주류 제조 대상에 증류주를 넣어달라는 것이다. 현재는 막걸리와 약주, 맥주, 과실주는 허용이 돼있다. 지금 전통주 업계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고, 신개념 술을 비롯해 전통주 관련 이슈를 많이 만들어내는 곳이 소규모 주류제조 양조장들이다. 증류주는 소규모 주류제조에 굉장히 매력있는 아이템이다. 위스키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시장에서 정말 조그마한 증류기에 내린 술을 파는 사람들이 많다. 증류 후에 숙성을 하지 않는 대신, 허브 등을 넣어 바로 판매한다. 금방 증류한 술을 판매할 수 있다면 젊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사업아이템이 될 것이라 본다. 세상 한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크래프트 증류주’ 근사하지 않은가? 이미 미국에서는 유행하고 있다."


 

2019년에 10주년을 맞은 가양주연구소 졸업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울양조장 제공


-전통주교육기관을 운영한 계기는?

"사실 처음에는 교육을 할 생각이 없었다. 전공은 술과 간접적으로 연관된 외식경영학이지만, 발효쪽으로 공부하지는 않았다.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전통주를 몰랐고, 관심도 거의 없었다.

오래전부터 바텐더를 했고, 고등학교까지는 축구선수였다. 국가대표 선수였던 이영표, 김남일과 같은 시기에 축구를 했다. 그러다, 고3때 무릎을 다쳐 축구를 계속할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 취직했던 곳이 서울 압구정동 바였다. 바텐더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바텐더로 일하다 보니까, 당연히 우리 술보다는 외국 술에 관심이 많아지고 배우게 됐다. 칵테일 만드는 방법, 유럽 위스키 등 많은 술들을 접하게 됐다. 선배에게서 바 숟가락으로 맞으면서 다양한 술을 배웠다.

몇년 지나서 바 매니저가 되다 보니까, 바에 진열된 수많은 술들 중에 전통주가 하나도 없다는 게 눈에 보였다. ‘왜 우리나라 술은 하나도 없지?’ 문득 이 생각이 났다. 그때 내 나이가 23~24살 때, 2000년쯤이었다. 바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였다.

매니저가 되고 나서야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전통주 교육기관이 거의 없어 그나마 배울 수 있는 곳은 다 가서 전통술을 배웠다. 국순당 내에 술을 가르치는 곳도 갔고, 박록담 소장님의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도 배웠다. 그렇다고 전통주쪽으로 업종을 바꾼 것은 아니고 웨스턴 바 매니저로서, 우리 술도 어느 정도는 알아둬야겠다는 정도였다."

-전통술은 어떤 계기로 만들었나?

"밤에는 바텐터 매니저로 일하고, 낮에는 지방의 전통주 만드는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여행하면서 전국의 가양주 빚는 분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나, 술 공부는 많이 한 것 같은데, 술을 만들어보면 술이 제대로 나온 적이 한번도 없었다. ‘아, 나는 술을 못만드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나중에 문헌을 봤는데 이런 문구가 있었다. ‘쌀 된 되로 물도 돼야’.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쌀과 물의 비율을 말한 것으로 ‘쌀과 물의 양을 같이 해야 술을 빚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전에 내가 공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술 제조 지침이었다. 이전에는 쌀 한되는 800g, 물 1되는 1.8l로 알고, 이 비율대로 술을 만들었다 죄다 실패했다. 물 양을 많이 한 탓에 술이 도중에 시기 일쑤였다. 그런데, 옛문헌에서는 ‘쌀과 물의 양을 같이 하라’고 적혀 있었다. 그래서 문헌에 나와있는 비율로 술을 만들었더니, 신기하게도 술이 제대로 만들어지는게 아닌가. ‘우리 조상들이 쉽게 술을 만들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량단위의 차이인가?

"맞다. 현대 계량단위를 조선시대 계량단위로 환산해서 술을 만들어보니까 술빚기가 너무 쉬웠다. 그래서 이런 정보를 인터넷 상에 공유한 것이 가양주연구소의 출발점이 됐다. ‘술독’이란 사이트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여러 전통술 레시피가 쌓여감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가입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소통, 교육의 장으로 발전해나갔다. 그러다 정기모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뭉치게 되니까 단체를 만들고 거기서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

2010년에 가양주연구소를 만든 취지는 술 교육보다는 전국의 가양주들을 많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술 교육을 해보니,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또다른 사람들에게 가양주를 알리고 있다는걸 알게됐다. 그래서 ‘내가 굳이 가양주를 알리지 않더라도, 가양주 교육에 집중하면 교육생들이 자연스럽게 가양주 홍보를 하겠다' 생각이 들어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상업양조를 하는 제자들은 얼마?

"30곳이 넘을 것이다. 사실, ‘제자’라는 말도 잘 안쓴다. 뭔가 틀에 가둬놓는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내가 과거에 가르쳤던 분들이 오히려 지금은 나의 ‘스승'이다. 상업양조를 먼저 시작한 선배들이다. 나이도 대부분 나보다 많다. 교육 당시에도 나는 상업양조 영역에 있어 그분들에게 도움을 못줬지만, 그분들은 이제 상업양조를 시작한 내게는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취미삼아 만들어 자신이 마시려고 만드는 ‘가양주’와 외부에 판매할 목적으로 만드는 ‘상업양조’는 설비는 물론 제조방법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번에 ‘서울’을 출시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던 것도 ‘제자이자 스승들’ 덕분이다."

-일본 유학 가려고 했다는데?

"26살때 도쿄 농업대학으로 유학갈 생각으로 2년간 일본어공부를 했다. 양조전문 대학인 도쿄 농업대학은 양조장 2세들이 모두 다니는 학교다. 바텐터 업무가 새벽에 끝나니까 아침 6시 타임 일어학원을 다니고 퇴근하는 식이었다.

근데 유학길에 올랐다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일본 공항에서 강제 퇴거를 당했다. 공항에서 입국도 못하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본격 유학 전 일본으로 건너가 일년 정도 어학코스를 밟을 작정이었다. 당시 한일 관계가 아주 안좋았다. 일본 어학원 신청 절차를 밟고 학원 시작 한달 전에 갔는데, 공항 입국심사에 걸린 것이다. ‘어학원 시작은 1월인데, 왜 한달 전에 미리 왔냐?’는 지적을 받았다. 결국 하루 철창에 갇혀 있다가 다음날 한국으로 쫓겨났다.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은 영화 ‘터미널’ 비슷한 일이 내게 벌어진 것이다.

결국 일본 유학은 포기해야했다. 이번에는 일본 어학원 개원에 맞춰 한달 뒤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이번에는 ‘강제 퇴거' 이전 기록이 문제돼 다시 강제퇴거됐다. 또다시 철창에 갇혀있다가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와야했다. 처음에는 눈물이 막 나왔다. 철창 안에서 생각했다. ‘두고 봐라. 내가 열심히 술을 공부해서 너네(일본)를 이겨주겠다’고. 일본 유학 좌절은 내가 전통주에 더 몰입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양조장 류인수 대표는 “앞으로 소규모주류 제조 대상에 증류주가 포함되면 젊은 사람들의 전통주 업계 진출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순욱기자


-일본 유학 갔더라면?

"학사부터, 석사, 박사과정을 다 밟을 생각이었다. 아마 그랬다면 지금의 나(한국 최고의 전통주 전문가)는 당연히 없었을 것이고, 이자카야 업소를 운영하고 있거나 일본 술 관련 일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가 여전하다. 전통주 업계의 미래는?

"영업시간 제약을 받는 전통주 주점들의 피해가 크다. 홈술 확산으로 전통주 업계는 크게 위축되지는 않고 있다. 온라인, 편의점, 대형마트 판매는 늘고 있다. 특히 2017년 7월에 온라인통신 판매가 되면서 시장 확대를 위한 물꼬는 열렸다고 본다.

하지만 코로나 영향이 작다고 보지 않는다. 전통주 전체에서 주점이나 식당에서 팔리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전통주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는 요즘같은 시기에 하필 코로나 사태가 터진 것은 아주 비관적이다. 온라인판매 허용, 종량세 전환 등 전통술 시장 활성화를 위한 여건들이 하나하나 마련돼 가고 있는 시점에 터진 코로나 사태는 작지 않은 걸림돌이다.

특히 주점의 위축이 아쉽다. 전통술 업계가 발전하려면, 양조장만 잘 한다고 되는게 아니다. 전통술 붐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전통주점이다. 전통주를 알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주점들이다."

[박순욱 선임기자 swpark@chosunbiz.com]

출처 : https://n.news.naver.com/article/366/0000676036?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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