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비즈][박순욱의 술기행](40) 전통주에 반해 대학교수 자리를 차버린 남자

조회 수 125 추천 수 0 2021.01.07 13:28:56
조선비즈
  • 박순욱 선임기자
  • 입력 2020.12.14 15:05

  •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 전기보 대표, 2014년 ‘막걸리 성지'인 포천에서 양조장 열어
    중국에 사진여행 갔다가 일행이 가져온 약주 맛보고 전통주 배워 사이버대학 교수도 포기
    양조장 4년만인 2018년 우리술품평회에서 탁주부문 대상과 우수상 타, 전국적 유명세 누려
    술 영업 신경쓰기 싫어 양조장 인근에 주막 운영, "내가 만든 술, 내가 직접 판다"
    은퇴연구소 지금도 운영…"은퇴 후 한 우물 파지 말고, 다양한 분야 관심 가져라"

    보험회사에서 24년을 다녔다. ‘직장생활의 꽃’이라는 임원도 했다. 은퇴 후 직장 경험을 살려 사이버대학 교수자리도 꿰찼다. 두번째 직장(대학교수)은 사학연금까지 보장했다. 사진이 좋아 틈틈이 외국 오지를 돌아다니며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쯤 되면 누가 봐도 부러울 노년이 아닌가?

    그런데, ‘전통주 빚겠다’고 정년과 연금까지 보장된 대학교수 직을 박차고 나온 양조장 대표가 있다. 2014년에 양조장을 차렸으니, 올해가 7년차다. 그러나, 아직 양조장 연간 매출이 1억이 못된다. 그래도 그의 얼굴은 ‘기념사진 찍을 때의 표정처럼’ 늘 웃음을 머금고 있다. "은퇴 후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고 있고, 또 부부 둘이서 살기에는 부족하지 않은 소득까지 벌고 있으니, 어찌 즐겁지 않겠습니까?" 고향인 경기도 포천에서 양조장과 주막을 운영하고 있는 ‘술빚는 전가네' 전기보 대표 이야기다. ‘철밥통’ 교수직을 걷어차긴 했지만, 부럽기는 마찬가지인 인생을 그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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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의 전기보 대표. 술 영업을 하기 싫어 양조장 근처에 주점을 열고, 자신이 만든 술을 직접 팔고 있다. /박순욱 기자


    교보생명 상무로 퇴직하고, 2009년부터 열린사이버대학교 금융자산관리학과 교수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가 우리 술에 반한 것은 2013년 12월이었다. 취미를 같이 하는 동료 둘과 중국 저장성으로 사진촬영을 떠난 때였다. 전기보 대표보다 10살 어린 일행 한 사람이 여행 중 내놓은 전통주를 맛본 게 그의 ‘인생 터닝포인트’가 된 것이다.

    "직접 빚은 가양주였습니다. 당연히 처음 맛보는 술이었고요. 교수직까지 포함해 직장생활 30년을 하면서 온갖 좋다는 술은 다 마셨지만, 이런 술은 정말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술을 맛보고 나니 할머니가 갑자기 생각나더군요. 어릴 적 잠시 시골에서 할머니랑 산 적이 있었는데, 할머니 손잡고 간 동네 이웃 할머니 집에서 한두 모금 맛본 그때 술맛이 떠오르지 뭡니까? 그런 술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중국 사진촬영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곧바로 전통주 아카데미에서 탁주, 약주, 증류주 빚기를 차례로 배웠다. 이때만 해도 양조장을 차릴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2014년 4월에 가진 사진개인전에서 그가 직접 만든 술들을 사진과 함께 전시하면서 일이 커지고 말았다. 그의 술을 맛본 지인들이 "양조장을 차려도 되겠다"고 그에게 ‘바람'을 넣은 것이다.

    결국 그해 8월 대학에 사표내고 두달 뒤인 10월에 고향 포천에 소규모 양조장과 주막을 열었다. 부친이 운영하던 펜션의 노래방을 개조해 만든 양조장은 지금도 ‘전국에서 가장 작은 양조장' 열손가락에 꼽힐 정도로 아담하다. 법적 기준치보다 겨우 10평방미터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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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에 있는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은 원래 펜션의 노래방을 개조해 만들었다. /박순욱 기자


    양조장 인근에 주막을 연 것은 순전히 판로 때문이었다. "내가 만든 술은 모두 내가 판다, 내가 팔 수 있을 만큼의 술만 만든다"는 생각. 전 대표가 양조장을 하겠다고 했을 때 기존 양조장 대표들이 한결같이 말리면서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었다. "포천은 ‘막걸리의 성지'라 부를 정도로 이미 대형 양조장들이 넘쳐나고, 이들마저도 판로가 없어 고민인데, 신생 양조장이 무슨 수로 술을 팔겠느냐"는 거였다. 전 대표가 그래서 판로 걱정없이, 술을 직접 팔 생각으로 주막을 연 것이다.

    외부에 술을 팔지 않고, 주막을 찾아오는 손님에게만 술을 파니, 술꾼들도 그가 만든 술을 알 방법이 없었다. ‘반전의 기회’는 4년만에 찾아왔다. 2018년 농식품부가 주최한 우리술품평회 대회에서 전 대표가 만든 막걸리 2종이 대상과 우수상을 차지했다. 전국에서 70여개의 막걸리 브랜드들이 참가, 이중 3개 제품에 상을 주는데 그중 2개를 그가 만든 ‘산정호수 동정춘 막걸리'(대상), ‘배꽃담은 연'(우수상)이 받은 거다. 전국적 유명세를 탄 그의 술들은 이제 온라인 판매가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양조장을 차린 계기가 된 ‘중국에서 맛본 전통주'는 어떤 술이었나?

    "삼양주(밑술 한번에 두번의 덧술을 더하는 술)로 빚은 맑은술, 약주였다. 가양주 빚는 사람은 대개 삼양주를 빚는다."

    -맛이 어땠길래 반할 정도였나?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막걸리, 사케 맛과도 달랐다. 오랜 직장생활 동안 술도 많이 마셨는데, 한번도 마셔보지 못한 맛이었다. 아주 맑고, 부드러운 맛인데 혀끝을 감도는 부드러운 맛이라고 할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주 어릴 때 맛봤던 ‘그맛’이었다. 어린 시절 잠시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경상도 울산)에서 할머니와 같이 산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이웃집에서 행사가 있으면 꼭 나를 데리고 다녔는데, 그때 내 나이가 7살 전후였다. 당시 시골은 마을에 무슨 잔치가 있으면 꼭 술을 빚었다. 일곱살 짜리가 술맛을 알겠는가? 할머니 친구분들이 술을 권하면 홀짝홀짝 잘 받아마셨다. 그때 마신 술맛이 이번에 중국 사진여행에서 마신 술에서 났다. 할머니의 기억과 함께. 그래서 이 술을 내가 만들 수 있다면 진짜 재미있겠다 싶었다."

    -술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양조장을 차릴 생각까지는 안했을 거 아닌가?

    "물론 그럴 생각은 없었다. 양조장을 운영하는게 얼마나 힘든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막연하게 ‘양조장 허가받는게 굉장히 어렵다'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실제 중국까지 본인이 만든 술을 가져온 사람도 양조장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사진이 우선이지, 술은 취미로 만든다고 했다.

    -양조장을 차리겠다는 결심을 하게된 또 다른 반전이 있었나?

    "내가 중국여행 직후인 2014년 1월에 한국가양주연구소 기초반에서 술을 배우면서부터는 ‘양조장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가 1월이었는데, 그해 설 명절이 2월이었다. ‘설날에 내가 만든 술로 차례를 지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양주연구소 류인수 소장에게 레시피를 달라고 했다. 이양주인 석탄주(워낙 맛있어서 삼키기 아깝다고 붙여진 이름) 막걸리 레시피를 주었다. 그걸 토대로 술을 빚어 설날 차례주로 썼다. 그런데 마셔본 가족, 친척들 반응이 엄청 좋았다.

    또 한번의 계기가 있었다. 그해(2014년) 4월에는 서울 인사동에 사진 전시회가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만든 술도 같이 전시해보자는 생각에서 ‘월하독작(중국 이백의 시 제목)’을 주제로 전시 사진 밑에 술을 깔아놓았다. 직접 내가 만든 15가지의 술을 관람객들이 시음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양조장은 막연하게나마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사진과 술 전시회를 여니, 사진보다 술에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더 많았을 정도로 술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 그 중에는 ‘이 술들을 제품화해보라'는 의견도 많았다. 물론 농담반 진담반 했던 얘기들이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내게 아주 강하게 다가왔다."

    -말리던 사람들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많았다. 사진전에서 자신감을 얻고 ‘양조장을 해볼까' 하고 양조장 대표들을 만나러 전국을 다녔다. 그런데, 대부분의 양조장 대표들은 ‘하지 말라'고 말렸다. ‘양조장을 할꺼면 어디서 할거냐?'고 묻길래 ‘서울은 여의치 않고 고향인 포천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하니까 ‘포천은 새 양조장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는 게 아닌가. ‘포천은 이동막걸리, 일동막걸리, 포천막걸리를 비롯해 어찌보면 ‘막걸리의 성지’ 비슷한 곳이라서 후발주자가 새로 뛰어들기가 너무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이미 포천에서 ‘난다 긴다’는 양조장들도 판로가 없어서 난리인데, 신생 업체가 만든 술은 팔기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하필이면, 막걸리의 일본 수출이 막히면서 ‘이제 막걸리 시대는 끝났다'는 분위기가 돌던 때였다."

    -판로 확보가 가장 큰 문제인 게 사실이다.

    "맞는 얘기이긴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봤다. ‘유통(판매)이 안된다면 내가 만든 술을 직접 팔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런데 전에 내게 양조장을 권했던 한 친구가 주막(주점) 얘기를 했던 게 기억이 났다. ‘그래, 양조장과 주막을 같이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지금 주막 자리가 이전에 사놓은 밭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여기에 주막을 짓고, 내가 만든 술을 주점을 통해 판다면, 유통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겠다’는 거였다. 그 생각을 2014년 사진전시회 하면서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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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의 다양한 술들. /박순욱 기자


    -양조장 하려면 대학교수 직을 포기해야 했나?

    "학교 규정상 양조장 주인과 대학교수를 겸할 수 없었다. 당시 열린사이버대학교 금융자산관리학과(2009~2014년)에 적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근데 대학교수는 65세가 정년이고, 또 끝나면 사학연금도 나오니까, 사실 대학교수 하는 게 훨씬 안정적이긴 했다. 근데 양조장과 주막은 시작해봐야 될지 안 될지 모르는 거고, 했다가 거덜 날 수도 있는 사업이었다. 그렇다고 어떤 실체가 아직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양조장을 선택한 이유는?

    "당시 대학교 내에 내가 은퇴연구소도 운영하고 있었다. 외부강연 다니면서 ‘은퇴 이후의 삶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가장 행복하다’고 곧잘 얘기했는데, 실제 교수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도, 재미있지도 않았다. 내가 대학교 다닐 때 알던 대학교수가 아니었다. 요즘 점점 더 심해지고 있지만 교수도 학생모집이 가장 중요한 업무였다. 일종의 영업이다. 영업하기 싫어서 오래 다니던 보험회사 그만뒀는데, 대학에 와서까지 대학 이사장 만나서 ‘오늘 학생 몇명 모집했나요?’ 이런 얘기를 들어야 했다.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 게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후가 보장돼도 이렇게 맘고생하면서 할 일은 아니다.’ 그래서 양조장을 선택하고 학교를 그만두기로 맘먹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몇달 안돼 양조장과 주막을 차렸다.

    "학교를 그만둘 수 있는 시기가 2월말, 8월말이다. 학기가 끝나야 사퇴할 수 있으니까. 근데 당시(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시기)가 4월이었으니, 8월에 그만둘 수 있는 셈이었다. 그러면 양조장은 9월에 오픈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개월만에 양조장 면허를 비롯해 모든 걸 다해야 했다. 아무튼 데드라인을 9월1일로 잡아놓고 시작했다.

    주막 짓는 건 짓는 거지만, 양조장 허가를 받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급하게 양조장을 차린 곳이 아버님이 운영하는 펜션의 노래방이었다. 노래방 기기를 들어내고 양조장 설비를 들여 면허신청을 했다. 그 공간 전체가 57평방미터인데, 양조장 허가를 위한 최소 면적(45평방미터)을 겨우 넘긴 사이즈였다. 전국에서 가장 작은 규모에 속할 것이다. 양조 기술자와 주방장을 구할 수 없어 내가 ‘1인2역’을 다 맡았다. 결국 계획보다 한달 늦은 10월에 오픈했다."

    -인터넷 판매 채널은 많나?

    "인터넷 판매도 처음에는 15~20군데 했는데, 이게 굉장히 번거로웠다. 많은 판매처에서 꾸준히 주문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드문드문 그것도 안좋은 시간에 주문이 들어오는게 큰 스트레스였다. 나도 양조장에만 전념하지 않고, 나름 여가를 즐기는 편인데, 특히 외국여행 갔을 때 새벽 두세 시에 주문 오는 게 가장 싫었다. 시차가 다르니까. 그런데 외국 있을 때 새벽에 전화받고 보면 ‘막걸리 두병 보내주세요' 했다. 그래서 지금은 한군데만 한다. 그래도 인터넷 매출은 여러군데 했을 때와 비슷하다. 여러군데 무리하게 인터넷 판매처를 늘리지 말고,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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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을 세상에 알린 술들. ‘산정호수 동정춘 막걸리’가 2018년 우리술품평회 탁주부문 대상을 받았고, ‘배꽃 담은 연 막걸리’가 우수상을 받았다. /박순욱 기자


    -우리술품평회 대상을 받은 산정호수 동정춘 막걸리는 어떤 술인가?

    "동정춘은 우리 양조장 술 중 레시피가 공개된 유일한 술이다. ‘조선 3대 명주’라는 술이다. 옛 문헌의 주방문을 참조해서 만들었다. 쌀로 구멍떡을 빚어서 그걸 뜨거운 물에 쪄서 으깬 뒤에 누룩을 넣고, 물의 함량을 최소화해서 밑술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 고두밥을 덧술로 넣은 이양주다. 다른 술에 비해 4분의 1정도의 물만 쓴다. 물을 적게 넣어 단맛이 아주 강하다. 열대과일향이 나는 귀한 술이다. 알코올 도수는 6도, 높지 않다. 물을 적게 넣어 쌀 함유량이 36%나 된다.

    동정춘은 레시피가 공개된 술이라서 여러 사람이 동정춘 탁주를 만든다. 그런데 누구는 동정춘 알코올 도수를 8도로 하고, 난 6도로 했다. 마셔보면 맛에 차이가 있다. 옛문헌에는 당연히 도수가 적혀있지 않다. 술 제조자가 자기 방식대로 스타일에 맞는 도수를 정하는 것이다. 어떻게 소비자에게 적합하게 접근할 것인가 고민을 양조인들이 해야 한다.

    가령, 시중에 15도 막걸리도 드물지 않다. 사실은 그게 만드는 사람의 욕심일 가능성이 크다. ‘내가 만드는 술은 이렇게 도수가 높아야 개성을 나타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도수 높은 탁주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고 본다. 마시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너무 독한 게 사실이다. 만약 15도짜리 막걸리를 ‘막걸리처럼’ 마신다고 치자. 보통 막걸리 6도보다 두배 반 독한 술을 벌컥벌컥 마실 수 있겠나? 한잔에 훅 가버릴 수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술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동정춘을 일반인들이 마시기에 부담없는 도수인 6도로 만들었다. 동정춘은 우리 양조장 매출의 80%를 책임진다.

    이 술은 양조인들이라면 다들 만들고 싶어하는 술이다. 하지만 실제로 상업적으로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구멍떡을 만들어 손으로 일일이 으깨야 하는 등 만들기가 너무 번거롭고 원가 대비 효율적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배꽃 담은 연 막걸리는?

    "배꽃 담은 연은 이화곡(누룩의 일종)을 연입에 싸서 빚은 술이다. 일반적으로 이화곡은 떠먹는 술인 이화주를 만들 때 쓰는 누룩이다. 도수는 10도. 이양주다. 멥쌀 밑술에 찹쌀 덧술을 썼다."


    이밖에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 막걸리로는 ‘궁예의 눈물’이 있고, 엊그제 새로 출시한 술이 ‘주홍춘’이란 막걸리다. 주홍춘은 이화곡 누룩에 흑미찹쌀을 사용했다. 그래서 붉은 색상을 띤다. 355ml 10도로 1만5000원.

    -궁예의 눈물은 실제 인물인 궁예 스토리를 이용했나?

    "술 이름이 궁예의 눈물인 것은 이곳 산정호수 근처에 명성산이 있는데, 울 명 자, 소리 성 자를 쓴다. 궁예가 왕건에게 잡혀 이 산에서 울었다고 해서 산 이름이 명성산이 됐다. 명성산 정상에 억새가 장관인데, 매년 억새축제가 열릴 정도로 유명하다. 억새의 어린 순이 이 술 궁예의 눈물에 들어갔다. 억새 순을 즙을 내서 넣었다. 그래서 술 이름이 궁예의 눈물이다. 술에 억새 순 향이 나는건 아니다. 지역의 역사 스토리를 술에 담은 경우다. 궁예의 눈물은 석탄주다. 우리 양조장의 베이스가 되는 술이다. 약주와 증류주는 이 술을 베이스로 만든다."

    -막걸리 발효와 숙성은 얼마나 하나?

    "대부분 6주 정도 발효, 6주 숙성한다. 12주 정도 되면 병입을 한다. 유통기한은 90일이다. ‘10일 유통’을 내세우는 대기업 막걸리 업체는 ‘10일 지나면 막걸리 병 속의 효모가 다 죽는다'고 얘기하는데, 사실과 크게 다르다. 왜 효모가 10일밖에 못 사나? 90일도 살고, 100일 지나서도 일부 효모는 살아있다. 저온숙성하기 때문에 효모가 오랫동안 살아있어 신선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살균막걸리가 아닌 생막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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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 전기보 대표는 2018년 우리술품평회 탁주부문 대상을 비롯해 다양한 상을 받았다. /박순욱 기자


    -약주와 증류주 중에서 특이한 제품은?

    "약주 중에 ‘홍매반개주’라는 술에는 팥이 들어간다. 15도 삼양주다. 1차 덧술은 찹쌀, 2차 덧술을 팥으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팥으로 만든 유일한 술이 아닌가 한다. 팥향이 강하다. 아주 드라이하다. 달지 않다. 홍매가 반쯤 피었을 때(홍매반개)의 약간 붉은 색이다. 팥은 전분이 많지 않아 발효 후에는 달지 않다. 대신에 알싸한 팥 향이 난다. 감칠맛이 도드라지는 술이다.

    증류주 중에는 알코올 도수 61도짜리가 있다. 환갑인 61세에 마시라는 뜻에서 도수를 61도로 하고 이름도 61로 했다. 가격도 6만1000원.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술이다."


    -누룩은 어떻게 만들어 쓰나?

    "일반 누룩은 압착식 누룩이다. 메주처럼 손이나 발로 꼭꼭 눌러 형태를 만들어 발효시키는 방법으로 만든다. 압착식 밀누룩이 주류를 이루는데 요즘 양조장에서는 쌀 흩임누룩도 많이 쓴다. 밀누룩과의 차이점은 맛이 깔끔하고 맛의 편차도 작다. 이게 사실 일본 사람들이 만든 누룩인데, 일본이 누룩 표준화를 잘하기 때문에 사케에 이 누룩을 쓴다.

    문제는 우리 양조장이 쓰는 쌀 흩임누룩을 입국이라 하고 그 입국들은 전부 고두밥에다 곰팡이를 넣는데 그 곰팡이가 일본 곰팡이다. 일본 곰팡이를 넣어 누룩을 만들어 술 발효에 쓰는데, 이것을 입국이라 한다. 그런데, 우리 쌀 흩임누룩은 똑같이 고두밥에 일본 곰팡이를 넣지 않고, 우리 고유의 앉은뱅이 밀가루를 코팅한다. 이렇게 누룩을 만드는건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장단점이 있다. 생각보다 곰팡이가 너무 많이 피어서 술에 곰팡이가 뜨기도 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거부감이 생긴다. 물론 나중에 이런 문제는 개선했다.

    동정춘, 궁예의 눈물은 쌀 흩임누룩을 쓰고, 배꽃담은 연, 주홍춘은 이화곡을 쓴다. 이화곡도 직접 만든다. 이화곡은 쌀가루가 배꽃처럼 하얗다 해서 이화곡이라 부른다는 얘기가 있다. 또 하나 다른 얘기는 떠먹는 탁주인 이화주를 배꽃이 필 때 담거나, 이화곡을 배꽃이 필 때 만든다 해서 이화곡이라 부른다는 얘기도 있다. ‘이화’라는 말이 배꽃과 연관해서 쓰는 말이긴 하지만, 실제로 배꽃을 재료로 쓰는 것은 아니다. 일반 누룩은 고두밥 덩어리를 쓰는데, 이화곡은 쌀가루를 쓴다. 그래서 쌀가루누룩을 이화곡이라 한다. 그런데 일반 이화곡은 손으로 만져서 딱딱하게 공룡알처럼 만들어서 이를 발효시켜, 겉에 있는 곰팡이를 긁어내고 깨서 사용한다. 그렇게 하면 또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이화곡도 흩임누룩 스타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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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 전기보 대표는 고두밥에 전통 밀가루를 코팅해서 만든 흩임누룩을 쓴다. /박순욱 기자


    -압착식 누룩보다 흩임누룩이 좋은 점은?

    "효율성이다. 압착식 누룩은 만들기가 너무 어렵다. 힘도 많이 들고, 그렇게 만든 누룩이 무조건 좋다고도 말할 수 없다. 워낙 밀도가 높아서 누룩이 잘못될 확률도 높다. 수분조절을 세밀하게 잘 해야 한다. 거기에 비해 흩임누룩이 당화력이 크게 떨어지지도 않고, 만들기도 훨씬 수월하다."


    -코로나 영향과 그 대비책은?

    "술 판매루트가 주점 직판, 온라인 판매인데, 그외에 일년에 몇번 열리는 각종 박람회 매출도 꽤 된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행사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있다. 그나마 규모를 줄여 열리는 행사도 손님이 거의 없다. 이런 측면에서 타격을 많이 받았다.

    내년에는 포천의 주점을 많이 개조할 생각이다. 주막인지라 식사 중심 공간으로 꾸몄는데 앞으로는 전통주와 특산품 판매공간으로 바꿀 참이다. 지나가는 손님들이 술을 편하게 구경하고 사갈 수 있도록 하고 굿즈도 많이 만들 생각이다. 술 지게미로 만드는 비누도 개발했다. 다양한 형태의 기념품, 증류주 소형제품들도 만들 작정이다. 전통주박물관 정도는 못되겠지만 전통주에 특화된 기념품들을 살 수 있는 특화된 공간으로 만들 생각이다.

    술 빚기 체험공간도 마련할 생각이다. 양조장은 워낙 좁아 구경만 하고 술빚기는 이곳 주막에서 해왔는데, 주막의 체험장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제는 음식보다는 술에 취중하는 공간으로 개조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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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을 찾은 손님들이 술 만들기 체험을 하고 있다. /술빚는 전가네 제공


    "생각보다는 젊은층에서 가격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2만원대의 막걸리, 약주에 거부감이 별로 없다. 처음 2만원에 팔 때는 욕 많이 먹었는데, 우리가 맵집을 키워놓으니 후발 양조장들은 비교적 쉽게 고가정책을 펴고 있다."

    -현재 생활, 소득에 만족하나?

    "작년에 8000만원 정도 매출을 했다. 올해도 비슷할 것이다. 마진이 좋은 사업이라 부부 둘 살기에는 나쁘지 않다. 대학교수할 때보다 자유로워서 지금이 더 좋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성취감은 돈으로 바꿀 수가 없다. 대학 교수 때 연봉도 8000만원 정도였다. 내 수입은 양조장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지금도 하고 있는 행복한 은퇴연구소 수입도 꽤 된다. 연구소 수입이 일년에 3000만원 가량 된다. 매주 금요일 밤 YTN라이프에 하고 있는 방송(프로그램명-제2의 인생)에서도 일년에 1000만원 이상 나온다.

    그래서 주막은 다소 느슨하게 운영한다. 주막은 한달 중 절반만 여는 셈이다. 나머지 절반은 강의 다닌다든지 사진 찍으러 가거나 다른 일 한다. 제주도 한달살기 시작한 이번 12월에는 거의 못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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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빚는 전가네 양조장 전기보 대표가 사진촬영차 잉카 유적의 백미인 페루 마추픽추를 갔을 때의 사진. 전 대표는 10번의 사진전을 가진 사진작가다. /술빚는 전가네 제공


    -주막에서 내놓는 술과 음식의 마리아주 몇개만 소개해달라.

    "동정춘 막걸리에는 가자미식혜가 잘 어울린다. 술이 단맛이 강해서 매콤한 가자미식혜의 식감과 매치가 잘된다.

    배꽃담은 연은 파전에 잘 맞다. 약간 드라이하면서 고소한 맛도 있어 기름기 있는 안주와 어울린다. 우리 주점에만 있는 메뉴인 누룩전도 어울린다. 누룩과 견과류를 넣어 전을 만든 것이다. 위에 토핑은 치즈로 해서 고소한 맛이 나는 요리다."

    -은퇴를 앞둔 50대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는?

    "퇴직 후의 삶을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새로운 출발’이라고 얘기한다. 또 퇴직 후의 삶을 설계할 때 ‘포트폴리오(분산투자)’ 관점에서 접근해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한 분야에만 집중하지 말고, 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그게 큰 소득이 되지 않더라도 다양한 분야에서 접근해보는게 낫다는 얘기를 한다. 지금은 한우물을 파서 될 세상이 아니다.

    이럴테면 강연 도중 내 얘기를 간혹 하는데, 나는 양조장, 연구소, 방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사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전반적으로 다들 어렵지 않았나?
    근데, 만일 양조장, 주막만 했다면 어땠을까? 손님이 안오면 난리가 나는 건데 의외로 온라인 판매도 잘되고, 또 한 회사의 컨설팅 업무를 하게돼 한달에 두번씩 다닌다. 갈 때마다 100만원씩 받는 컨설팅이다. 오프라인 강연은 많이 줄었

    지만 그나마 여러군데 일을 걸쳐 놓았기 때문에 큰 손실은 없었다.

    할 줄 아는 게 여러가지 있으면 그 분야에서 소득이 크게 발생하지는 않더라도, 시간도 보낼 수 있고, 관심영역을 넓힐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은퇴 후에 ‘나는 이것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에서 한 분야에 올인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게 좋다. 지금처럼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출처 :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0/12/14/2020121401767.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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